그날의 이야기

(1960년)제2공화국 헌법 공포, 윤보선 대통령 취임;이승만 독재를 극복하고, 박정희를 좌익 프락치라고 규정한 비운의 대통령 윤보선. 경무대를 청와대로.

Noah3113 2024. 12. 2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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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이후,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헌정사상 최초로 내각책임제를 채택한 정부형태를 가지게 된다. 제2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중심제를 폐지하고, 행정권을 국무총리와 내각에 집중시키며, 대통령은 의례적인 역할로 제한된다. 국회는 단원제로 구성되었고, 국회의원들이 구무총리를 선출하며, 국무총리는 내각을 조직하고 운영하는 책임을 맡았다. 

당시 윤보선이 간접선거(국회선출)로 제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으며, 주로 상징적이고 의례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실질적인 정권 운영은 국무총리인 장면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장면내각). 윤보선은 정치적 중립과 내각의 지원역할에 충실하며, 제2공화국의 새로운 민주적 틀을 강화하는데 기여하였다. 윤보선은 대통령으로 기록되었지만 상징적 역할에 불과했고 실질적 행정권행사는 국무총리에게 있었다.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윤보선은 사실상 실권을 상실하였고, 1962년 결국 사임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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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통령재임기간은 무척 비운적이였지만, 그의 정치적 인생은 매우 파란만장하고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선대 대대로 벼슬을 해 온 가문으로써 부족함 없이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미군정기와 제1공화국 당시엔 야당정치인이였고, 5*16군사정변이후 대통령 사퇴성명을 발표한 뒤 이후부터는 반독재 야당지도자로 활동하였고, 박정희를 군부 내 좌익 프락치라고 규정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정신적 대통령' '영국신사' '재야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나는 경무대에 들어오면서 이름을 바꾸고 싶었다. 이는 일제강점기때는 총독의 관저였고, 자유당때는 독재체제를 강화한 곳이여서 오명의 잔영을 씻어버리고 싶었다." 그는 대통령으로 취임한 당시 경무대라는 인식이 좋지 않다 하여 1961년부터 이름을 청기와를 덮었다는 의미에서 청와대로 바꾸었다. 청와대라는 말은 이때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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