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5)
-
노량 : 죽음의 바다(2023);성웅 이순신의 죽음과 스토리, "철군하는 왜군을 한 놈도 남기지 마라!" 등자룡과 시마즈의 대결 등.
제목 : 노량 : 죽음의 바다(Noryang:Deadly Sea)3등급 : 12세 관람가장르 : 액션, 드라마출연 : 김윤석(이순신), 백윤식(시마즈), 정재영(진린), 허준호(등자룡), 김성규(준사), 이규형(아리마), 이무생(고니시), 최덕문(송희립), 안보현(이회), 박명훈(모리아츠), 박훈(이운룡), 박용우(히데요시), 안성기(어영담), 여진구(이면), 이제훈(광해), 김민상(이에야스), 공명(이억기), 남명렬(윤두수) 등등드디어 우리 조선 역사의 최고 히어로 "이순신"장군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 임진왜란 발발로부터 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작스레 사망하고 왜군들은 혼란에 빠진다. 이에 왜군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퇴로를 확보하려 애쓰고, 명나라는 그저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며, 조선..
2024.05.01 -
(1597년)정유재란 발생, 명량해전, (1598년)노량해전;이순신,이순신 전사,정유재란 원인*결과,귀무덤,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도쿠가와 이에야스 집권, 후금 탄생, 위안부 결부 등.
정유재란이란 정유년에 일어난 난을 의미하며, 왜구가 다시 재침략한 전쟁이다. 당시 휴전이란 개념은 딱히 없었지만, 당시 일본과 명나라 사이의 강화협상 중 서로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여 파토나고 왜장 가토 기요마사 등이 본토의 예비대인 14만의 대군을 이끌고 재침략한게 정유년이였다. 본래 임진왜란의 일부 스토리이긴 하나, 이순신 영화 "명량"을 보면 그 내용이 잠깐 나오는데, 원균이 칠천량에서 수군을 다 말아먹어서 정유년에 전라도가 왜군 손에 떨어진다. 그래서 규모가 커져 별도로 "정유재란"이라 명칭을 붙이게 된 것이다. 이런 급박한 상황속에서 결국 조정은 이순신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에 재기용한다. 이후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은 고작 12척의 함선으로 서해 진출로인 명량(울돌목)의 지형조..
2024.02.25 -
(1592년)한산도대첩,진주대첩,(1593년)행주대첩;임진왜란 3대대첩,이순신,권율,김시민,학익진,이순신장군 해전 순서,2차진주대첩 등.
한사도대첩, 진주대첩, 행주대첩을 일컬어 임진왜란 3대 대첩이라 한다. 먼저 이순신장군의 주요해전을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옥포해전~당포해전~한산도대첩~부산포해전~명량대첩~노량해전 이다. 1592년 가장 먼저 이순신 장군의 첫번째 대첩 한산도대첩이 일어난다. 한산도대첩 한산도대첩은 견내량 대첩 or 한산 대첩으로 불리기도 하며 살수대첩(을지문덕), 귀주대첩(강감찬)과 함께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 3대 대첩이라 불린다. 경남 통영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께서 학익진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펼친 전투다. '학익진'이란 원래 육상전에서 쓰던 진법인데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형태를 취하고 적을 포위하듯 압박해 진격하는 진법이라서 학익진이라 불린다. 1592년 7월 이순신 장군은 판옥선을 이용하여 거짓 후퇴로 적선..
2024.02.24 -
(1592년)임진왜란 발생;원인과 영향,선조시대 정치상황, 조선과 왜의 무기 차이와 전략, 군사력의 중요성.
1592년(선조6년) 왜놈들이 조선에 쳐들어 와 '임진왜란'이 발생한다. 당시 동아시아 지역은 오랜 세월 다양한 민족들이 공존하면서 복잡한 관계를 형성해 왔는데, 특히 조선과 일본은 이웃한 국가로써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조선은 중국의 영향을 받으며 중앙집권적인 정치 체제를 갖추고 있었고, 일본은 무리한 확장 정책을 추진하며 군사적인 강화를 이루어 나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과 일본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고, 왜구라는 일본의 정책이 조선에 큰 위협을 안겨주었다. 선조임금은 중앙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하고, 경제와 문화 발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왜구의 빈번한 침략으로 안정적인 통치를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일본은 왜구라는 정책을 통해 조선을 흔들어놓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일본은 조선의 ..
2024.02.23 -
[영화리뷰]한산:용의출현(Hansan: Rising Dragon);박해일,변요한,안성기,손현주,학익진,세계4대해전,한산도대첩.
1592년 4월 임진란 발발 후 15일만에 한양을 빼앗기며 선조 조차 의주로 파천하며 명으로 이주할 결심을 할 정도로 조선 한반도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 이에 조선을 단숨에 점령한 왜군은 이제 명나라로 진출할 야망을 꿈꾸며 총병력을 부산포로 집결시킨다. 이런 위기 속에 장군 이순신은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조선을 구하기 위해 전술을 고민하며 출전을 준비한다. 왜군은 연승하여 그 우세로 한산도 앞바다로 향하고, 이순신은 조선의 운명을 건 전투를 위해 '한산도 대첩'을 준비한다. 1592년 음력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 이전 전쟁에서 파손된 거북선은 출전을 못하게 되고, 오로지 판옥선 56척으로 '학익진' 진법으로 수백의 왜군에 대적한다. 원균 이하 조선 수군 일부가 왜놈들을 유인하기 위해 먼저 출전..
2022.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