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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 — 평양으로 옮긴 왕, 고구려의 전성기를 열다; 장수왕 남진정책, 평양천도, 백제 한성 공략, 고구려 국제정세, 장수왕 재위기간 등.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열다섯 살의 소년이 왕좌에 앉았다.고구려 제20대 왕, 장수왕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광개토대왕이었다.고구려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정복군주 가운데 한 사람.아버지는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전쟁터를 누볐다. 백제를 공격했고, 신라에 군대를 보냈으며, 북쪽과 서쪽으로 영토를 넓혔다.그리고 마침내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의 최대 강국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넓어진 땅을 이제 누가 지킬 것인가? 광개토대왕이 남긴 것은 거대한 영토였다.아직 어린 장수왕에게 주어진 것은 그 영토를 지켜내고 더 강한 나라로 만드는 일이었다.소년 왕의 긴 시대가 그렇게 시작됐다.열다섯 살의 왕413년. 광개토대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장수왕이 왕위에 올랐다.나이는 겨우 열다섯. 하지만..
2026.09.20 -
광개토대왕 — 고구려의 땅을 넓힌 젊은 왕;고구려 최대 영토,전성기,광개토대왕 백제공격, 요동정복, 광개토대왕릉비, 신묘년, 광개토대왕 역사적 평가.
391년, 고구려에 새로운 왕이 올랐다. 왕의 이름은 담덕.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젊은 왕이었다.왕이 된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오늘날처럼 왕궁 안에서 명령만 내리면 되는 자리는 아니었다. 국경에서는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졌고, 주변에는 고구려의 영토를 노리는 세력들이 있었다.북쪽과 서쪽에는 여러 부족과 나라들이 있었고, 남쪽에는 백제가 버티고 있었다.젊은 담덕이 왕좌에 앉았을 때 고구려가 필요로 했던 것은 평범한 왕이 아니었다.강한 왕이었다. 그리고 담덕은 왕이 되자마자 움직이기 시작했다.왕이 된 지 1년, 그는 남쪽으로 군대를 보냈다392년. 광개토대왕은 백제를 공격했다.당시 백제는 고구려와 오랫동안 대립하고 있었다. 한반도 중부의 패권을 놓고 두 나라가 충돌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광개..
2026.09.20 -
고국양왕, 광개토대왕이 등장하기 전 고구려는 이미 칼을 갈고 있었다;고국양왕은 어떤 왕인가,업적정리,백제와의 전쟁,18대,광개토대왕 이전의 고구려.
왕이 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모든 왕에게 위대한 시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어떤 왕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역사책의 가장 굵은 글씨로 이름을 남긴다.또 어떤 왕은 훗날의 위대한 왕을 위한 길을 닦고도 정작 자신의 이름은 그 그림자에 가려진다.고구려 제18대 왕 고국양왕(故國壤王)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그의 재위 기간은 불과 8년.384년 왕위에 올라 391년 세상을 떠났으니, 광개토대왕처럼 수십 년 동안 대제국을 휘어잡은 왕과 비교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때때로 짧은 시간을 살아간 사람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맡긴다. 고국양왕의 역할이 그랬다.그는 소수림왕의 개혁과 광개토대왕의 정복 사이에 놓인 짧지만 중요한 다리였다.왕이 된 남자384년. 고구려의 왕좌에 한 남자가 올랐..
2026.09.15 -
소수림왕 — 칼을 들기 전에 나라부터 다시 세운 왕;불교공인,율령반포,태학설립, 소수림왕업적,고구려역사이야기,삼국시대,한국사블로그.
왕이 된다는 것은 때로 영광이 아니라, 무너진 나라의 잔해를 떠안는 일이기도 했다.371년. 고구려의 왕 고국원왕은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상대는 백제의 근초고왕이었다. 고구려에게는 뼈아픈 패배였다. 왕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나라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이 소수림왕이었다.아마 왕좌에 앉은 그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런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지금 당장 복수해야 하는가?’ 하지만 소수림왕은 칼을 먼저 들지 않았다. 그는 조금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나라의 안쪽이었다.무너진 것은 성벽만이 아니었다전쟁에서 패하면 사람들은 흔히 군대부터 생각한다.병사를 더 모으고, 무기를 더 만들고, 성벽을 더 높이면 다시 ..
2026.09.14 -
고국원왕|백제 근초고왕과 맞선 고구려 왕의 마지막 전투;전연 고구려전쟁,국내성 함락,미천왕릉 훼손,고구려 백제 전쟁, 평양성 전투,근초고왕 등.
나라를 지키려 했던 왕은 왜 평양성에서 쓰러졌는가왕에게도 도망쳐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왕의 도망은 평범한 사람의 도망과 다르다.왕이 달아나면 단순히 한 사람이 살기 위해 몸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그 뒤에는 수도가 있고, 백성이 있고, 조상들의 무덤이 있고, 무엇보다 왕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따라온다.고구려 제16대 왕, 고국원왕.그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이상하게도 한 가지 장면이 반복된다.무너지는 성.불타는 궁궐.그리고 다시 군사를 모으는 왕.그는 평생 나라를 지키려 했지만, 그의 시대는 고구려에게 너무나 거칠었다.1. 왕이 된 순간부터 전쟁이었다331년. 고국원왕이 왕위에 올랐다.그가 물려받은 나라는 결코 약한 나라가 아니었다.고구려는 이미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상당한 세력을 구축하고 ..
2026.09.09 -
소금 장수에서 왕이 된 사나이 고구려 '미천왕'; 미천왕 을불의 파란만장 삶,인생역전, 낙랑군과 대방군을 정복한 이유 등.
사라진 왕자가 낙랑을 무너뜨리기까지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고구려의 어느 밤, 한 사내가 산길을 걷고 있었다.등에는 소금 자루가 매달려 있었다.'왕자'의 등에 걸려 있어야 할 것은 검이나 활이어야 했지만,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은 소금이었다.누구도 그를 왕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누구도 그가 훗날 고구려의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는 그저 소금을 팔러 다니는 이름 없는 사내였다. 하지만 역사는 때때로 왕좌보다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그리고 훗날 미천왕이라 불리게 되는 이 사내의 인생은, 바로 그 낮은 자리에서 시작되었다.왕궁에서 사라진 왕자미천왕의 본래 이름은 을불(乙弗)이었다.그는 고구려 왕실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왕실의 피가 언제나 왕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왕궁의 피비린..
2026.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