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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양왕, 광개토대왕이 등장하기 전 고구려는 이미 칼을 갈고 있었다;고국양왕은 어떤 왕인가,업적정리,백제와의 전쟁,18대,광개토대왕 이전의 고구려.
왕이 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모든 왕에게 위대한 시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어떤 왕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역사책의 가장 굵은 글씨로 이름을 남긴다.또 어떤 왕은 훗날의 위대한 왕을 위한 길을 닦고도 정작 자신의 이름은 그 그림자에 가려진다.고구려 제18대 왕 고국양왕(故國壤王)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그의 재위 기간은 불과 8년.384년 왕위에 올라 391년 세상을 떠났으니, 광개토대왕처럼 수십 년 동안 대제국을 휘어잡은 왕과 비교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때때로 짧은 시간을 살아간 사람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맡긴다. 고국양왕의 역할이 그랬다.그는 소수림왕의 개혁과 광개토대왕의 정복 사이에 놓인 짧지만 중요한 다리였다.왕이 된 남자384년. 고구려의 왕좌에 한 남자가 올랐..
2026.09.15 -
소수림왕 — 칼을 들기 전에 나라부터 다시 세운 왕;불교공인,율령반포,태학설립, 소수림왕업적,고구려역사이야기,삼국시대,한국사블로그.
왕이 된다는 것은 때로 영광이 아니라, 무너진 나라의 잔해를 떠안는 일이기도 했다.371년. 고구려의 왕 고국원왕은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상대는 백제의 근초고왕이었다. 고구려에게는 뼈아픈 패배였다. 왕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나라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이 소수림왕이었다.아마 왕좌에 앉은 그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런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지금 당장 복수해야 하는가?’ 하지만 소수림왕은 칼을 먼저 들지 않았다. 그는 조금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나라의 안쪽이었다.무너진 것은 성벽만이 아니었다전쟁에서 패하면 사람들은 흔히 군대부터 생각한다.병사를 더 모으고, 무기를 더 만들고, 성벽을 더 높이면 다시 ..
2026.09.14 -
고국원왕|백제 근초고왕과 맞선 고구려 왕의 마지막 전투;전연 고구려전쟁,국내성 함락,미천왕릉 훼손,고구려 백제 전쟁, 평양성 전투,근초고왕 등.
나라를 지키려 했던 왕은 왜 평양성에서 쓰러졌는가왕에게도 도망쳐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왕의 도망은 평범한 사람의 도망과 다르다.왕이 달아나면 단순히 한 사람이 살기 위해 몸을 피하는 것이 아니다.그 뒤에는 수도가 있고, 백성이 있고, 조상들의 무덤이 있고, 무엇보다 왕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따라온다.고구려 제16대 왕, 고국원왕.그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이상하게도 한 가지 장면이 반복된다.무너지는 성.불타는 궁궐.그리고 다시 군사를 모으는 왕.그는 평생 나라를 지키려 했지만, 그의 시대는 고구려에게 너무나 거칠었다.1. 왕이 된 순간부터 전쟁이었다331년. 고국원왕이 왕위에 올랐다.그가 물려받은 나라는 결코 약한 나라가 아니었다.고구려는 이미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상당한 세력을 구축하고 ..
2026.09.09 -
소금 장수에서 왕이 된 사나이 고구려 '미천왕'; 미천왕 을불의 파란만장 삶,인생역전, 낙랑군과 대방군을 정복한 이유 등.
사라진 왕자가 낙랑을 무너뜨리기까지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고구려의 어느 밤, 한 사내가 산길을 걷고 있었다.등에는 소금 자루가 매달려 있었다.'왕자'의 등에 걸려 있어야 할 것은 검이나 활이어야 했지만,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은 소금이었다.누구도 그를 왕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누구도 그가 훗날 고구려의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는 그저 소금을 팔러 다니는 이름 없는 사내였다. 하지만 역사는 때때로 왕좌보다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그리고 훗날 미천왕이라 불리게 되는 이 사내의 인생은, 바로 그 낮은 자리에서 시작되었다.왕궁에서 사라진 왕자미천왕의 본래 이름은 을불(乙弗)이었다.그는 고구려 왕실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왕실의 피가 언제나 왕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왕궁의 피비린..
2026.09.06 -
관구검의 칼끝에 선 동천왕, 고구려의 운명을 바꾸다;고구려 동천왕,고구려11대왕,관구검 침입,위나라와 전쟁,밀우,유유,고구려멸망위기,삼국시대.
환도성의 밤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멀리서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성벽 너머로 붉은빛이 하늘을 물들이고, 바람을 타고 재가 날아왔다.“폐하… 위군이 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동천왕은 아무 말이 없었다.잠시 후 왕이 천천히 성 밖을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자신이 지켜야 할 고구려의 수도가 있었다.그리고 지금, 그 수도가 무너지고 있었다.동천왕의 시대는 평온하지 않았다.중국에서는 위나라가 세력을 키우고 있었고, 고구려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244년.위나라 장수 관구검이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처음부터 고구려가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동천왕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맞섰다.비류수에서 벌어진 전투.고구려군은 위군을 공격했고, 한때 위나라 군대가 크게 밀릴 정도였..
2026.08.28 -
고국천왕은 왜 을파소를 선택했을까? 고구려를 바꾼 왕의 결단;고구려 왕권강화,진대법,을파소,국상,고구려사회제도.
고국천왕, 고구려의 틀을 바꾼 왕고구려 제9대 왕, 고국천왕.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고구려는 이미 강한 나라였지만, 아직 왕의 힘이 나라 전체를 완전히 장악한 것은 아니었다. 귀족들의 영향력은 컸고, 백성들의 삶 역시 풍년과 흉년에 따라 크게 흔들렸다.고국천왕은 먼저 나라의 중심을 왕에게 모으는 일부터 시작했다.그는 귀족의 신분만을 보고 사람을 쓰지 않았다.능력이 있다면 신분이 낮더라도 과감하게 발탁했다.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을파소였다.고국천왕은 을파소를 국상으로 임명했다.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고국천왕은 자신의 권력을 지켜줄 사람보다 나라를 제대로 이끌 사람을 선택했다.을파소와 함께 고국천왕은 국가의 체제를 정비하고 왕권을 강화해 나갔다.그리고 194년.고구려 역사에서 중요한..
2026.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