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26. 19:53ㆍ카테고리 없음
조선시대 법전은 세조가 편찬한 [경국대전]과 영조가 편찬한 [속대전]이 있었는데, 법적효력이 있는 서적들이 서로 나뉘어져 있어 법제 운용에 불편이 많았다. 그래서 이것들을 하나로 통합하여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여 새롭게 편찬한 것이 정조 9년에 편찬된 [대전통편]이다. 당시 편찬을 담당했던 당상관들은 각자의 작업분에 대한 초고를 완성하면 모두 정조의 결재를 받았다고 한다. 즉, 과거 판례들에 근거해서 완성한 것이 아니라 정조의 허가가 떨어져야 통과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전통편은 정조를 중심으로 당시 집권층의 이해관계가 많이 반영되어 있기에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참고로, 대전통편은 성종때의 경국대전과 영조때의 속대전을 통합한 법전이고, 대전회통은 대전통편과 이후의 법령을 집대성한 법전이다.
대전통편의 내용 중 [호전매매한]에 관한 내용을 몇 개만 대략 살펴보면 이렇다.
*전지에 관한 송사는 백성의 생계과 밀접하니, 한결같이 공정하게 해야 백성들이 따를 것이다. 전지와 가사의 매매에 대해서는 15일로 정한 기한 안에 정장했더라도 30일이 지나도록 소송장에 나오지 않으면 송사를 들어주지 않는다.
*궁가에서 전토를 매입할 때는 허실을 조사하여 분명하게 하고 매매를 허락한다.(지레 먼저 매매하게 하지 말고, 현재의 점유자에게 송사의 판결을 받게 한 후에 매매를 허락한다. 만일 조사가 끝나지 않은 전토를 지레 먼저 매매하면 해당 궁ㄱ방의 소임과 내수사의 관원을 모두 엄중히 감처한다.)
*퇴도지(토지의 경작권을 팔아서 대여한 땅)의 매매는 10년을 기한으로 한다. 만 10년이 되었으면 보상금없이 도로 물릴 수 있으며, 5년이 지났으면 반값을 지불하고 도로 물릴 수 있다. 만일 해당 값에 맞는다면 불과 1~2년 되었더라도 도로 물리는 것을 허락한다.
*우마에 관한 송사는 좋은 이름을 내는 것이니, 옛 사람들이 남긴 아름다운 법을 본받아야 한다. 역마의 매매는 3달을 기한으로 하되, 기한이 지나면 도로 물리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노비에 관한 송사는 법전에 실린것이 번잡하고 기록이 많아서 의거할 수 없으니, 인정을 참작하여야 할 것이요, 법문에만 구애할 일이 아니다. 노비를 매매할 때는 관에 신고해야 하며, 사사로이 합의하여 매매한 경우에는 그 노비 및 값을 모두 관으로 몰수한다. 노비를 매매한 후 그 노비가 도망하였다면 그로부터 만 2년을 기한으로 정하고, 기한이 지나면 도로 물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전통편은 당시 집권층의 이해관계가 많이 반영되어 있기에 객관성이 떨어지는 한계는 있지만, 정조대왕께서 과거의 법전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 시대상을 반영하여 최대한 애쓰시고 백성의 민심을 살펴 완성한 조선시대 최고의 법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경국대전에서 사문화된 법은 다른 것으로 수정하고 재확인함으로써 법을 재정비하고 법의 의미를 살려 법따로 정치따로 였던 현실을 법으로 공정하게 다스리기 위함이 있었고, 이것은 결국 왕권강화를 위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법대로 하면 왕이 최고권력을 쥘 수밖에 없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