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이야기(98)
-
(1948년)10월19일 여수*순천 반란사건;여전히 진상규명 중인 여순사건. 이 사건으로 인해 '국가보안법'이 제정되고, 주한미군의 철수가 연기되었다.
1948년10월19일에 발생한 여*순반란사건은 그 이전에 일어났던 제주4*3사건을 진압하라는 이승만 정권의 명령을 거부했던 여수14연대 군인들과 이를 진압하려던 정부군 사이에 벌어진 사태였다. 당시 이 사건으로 민간인들도 많이 희생되었다.그 어떠한 명령의 색깔과 과정도 필요없이 그냥 무조건 정부의 뜻에 반대하면 그게 다 반란이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무고한 시민들까지 희생되었는데도 '반란'사건으로 기록되어왔고, 70여년이 지난 후에야 '여순사건'으로 정정되었다. 여전히 진상규명중인 여순사건... 24년 발간된 교과서에서 여순사건을 반란사건으로 명명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48년 향토경비대를 근간으로 창설된 여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당시 미군정의 명령으로 남로당 해산령이 내려졌고, 제주..
2024.11.18 -
(1948년)5*10남한만의 총선거실시,헌법공포(제헌절),대한민국정부출범 그리고 조선인민공화국 설립;이승만,김일성 ~ 북한 동포들을 향한 아쉬움.5대국경일.
1948년5월10일, 38도선 이남지연에서 UN위원단의 감시하에 남한만의 민주적 총선거가 실시된다. 이때 김구와 김규식 등 좌익에서는 이 단독선거를 반대하면서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어쨋든 선거결과 198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었고, 초대 국회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여 공포하였다. 7월17일은 [제헌절] 곧 헌법을 제정*공포한 날이다. 제헌절은 대한민국 5대 국경일 중 하나로써, 이날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헌법의 제정(7월12일) 및 공포(7월17일)를 전 국민이 경축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여 헌법수호를 다짐한다. 참고: 5대국경일 - 3-1절/7월17일 제헌절/8월15일 광복절/10월3일 개천절/10월9일 한글날.헌법을 제정한 후 7월17일에 헌법을 공포한 이유는, 조선왕조 건국일이 7월..
2024.11.11 -
(1947년)제주 4*3사건 발발; 공권력 발아래 희생된, 끝나지 않은 한! "아 ~ 제주도여!"
광복 후 한반도는 미소 냉전의 전장이 되어 남북의 이념적 대립이 심했다. 특히 1947년 제주도에서는 남로당의 영향력이 컸으며, 미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강했다. 제주도민들은 남한 단독 정부수립과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반대했다. 이로인해 제주도에서 단독정부 반대시위와 무장봉기가 일어났다.1947년3월1일, 제주도에서 391절기념 제주도대회가 열렸고, 제주읍에서 북국민학교의 행사가 끝나자 군중들이 가두시위에 나선다. 가두시위 중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치여 다쳤는데, 이에 흥분한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했고 부근에 포진하고 있던 무장경찰들은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았다. 이때 주민 6명이 희생되었고,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3*1사건'이 시작되었다. '3*1사건'에 항의하여 3월10일부터 민관합..
2024.11.03 -
(1946년)남북분단의 기초가 형성되는 시기; 남조선국방경비대(대한민국국군의 모체)창설. 미소공동위원회는 흐지부지, 이승만의 정읍연설.
1946년은 한반도에서 남북 분단의 기초가 형성되는 시기였다. 미군과 소련의 한반도 점령정책과 각 지역 주요 정치적 공작이 만발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속에서 남과 북의 정치적*군사적 대립이 심화되었다. 당시 미군이 한반도를 통치하면서 미군은 공산주의 세력 확산을 방지하고 군사적 안정성을 확보할 필요에 의해 남조선국방경비대라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군을 창설하였으며, 이는 1개연대규모로 미군정하에 창설하였으며 대한민국 군군의 모체가 된다. 이후 대한민국 국방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첫걸음을 하였다. 한국전쟁을 대비한 방어체계를 갖추어 남한의 독립적인 군사력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북쪽에서는 소련의 지원아래 김일성 중심의 공산주의 정부가 정착되어 가고 있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창설..
2024.10.29 -
(1945년)광복! 드디어 해방되었다; 일제의 패망으로 광복, 조선인민공화국 수립, 군정청 설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제가 패망하면서 한반도는 드디어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었다. 광복! 한반도는 약 35년간의 일본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을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독립을 위해 싸워 온 독립운동가들의 노력과 함게 연합국의 승리 덕분에 가능한 것이였다. 그런데, 일본 패망에 결정적 계기가 되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일본은 왜 질 싸움이 분명해 보였던 미국과의 무모한 전쟁을 벌였을까?일본이 '고래' 미국을 건드릴 수 있었던 이유, 첫번째 과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강대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경험. 그리고 훗날 강대국을 상대할 만큼의 고도성장을 이룬 발전과 항공모함 보유. 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저들의 똘아이 근성! 바로 패배를 알면서도 통제할..
2024.10.28 -
(1944년)징병제 실시, 여자 정신근로령;,위안부 '소녀상',종군위안부,간부후보생,하사관(부사관), 여자정신근로령이라는 표면 아래 위안부로 끌려가 인권을 유린당했다!
1938년부터 지원병제도를 통해 조선인 남성들을 전쟁에 동원해 온 일본. 그러나 1944년에 들어서자 전세는 불리해지고 지원병만으로는 부족하여 강제적 징병제를 실시한다. 만20세이상 조선남성들을 대상으로 강제 징병을 실시하였으며, 이때 약 20만명이 징집되었다. 이들은 전투병으로 일본군에 편입되었으며 태평양전쟁에 참전하거나 또는 일본 본토에서 노동력으로 활용되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간부후보생이라는 제도를 실시하였는데, 일단 이등병으로 끌려가서 일부는 간부후보생 시험을 봐서 합격시키기도 하였다. 물론 자신들과 같은 일본쪽바리들은 시험 본 전원을 장교 및 하사관으로 전원 합격시켜 차별을 두었다. 그래도 조선인들 중 고학력졸출신들은 조선인이라도 갑종으로 합격하여 장교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이 과정이 ..
2024.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