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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 7. 22:50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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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과 트로츠키

 

인간사회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인 '관리자들'과 가장 제한된 권리를 지닌 '창조자들', 분배구실로 창조자들의 노동산물을 가로채는 '중개자들'로 복잡하게 위계구조가 편입되어 있다. 개미 세계에 일개미, 병정개미, 생식개미 세 계급이 있듯이 인간사회도 관리자, 창조자, 중개자라는 세 계층이 있는 것이다. 

 

1924년 소련의 레닌이 사망했다. 그는 1921년 '신 경제정책'을 채택하여 자본주의적 경영이나 시장경제를 일부 인정했다. 이로 인해 소련은 경제가 어느정도 회복되어 갔지만, 과거 레닌의 비인간적인 정책을 답습하여 모든 것을 또다시 파괴했던 인물이 스탈린이다. 

 

레닌 죽음 그리고 스탈린

 

레닌 사 후, 소련에서는 레닌의 후계자를 둘러싼 권력다툼이 시작되었다. 1922년 레닌에 의해 스탈린이 서기장에 임명된다. 하지만 최고 권력자가 되기 위해선 트로츠키, 지노베프, 카메네프 등과 권력싸움에서 이겨야 했다. 그는 이기기 위해 '말없는 사람'으로 위장했다. 이로 인해 트로츠키는 계속 침묵만 하고 있는 스탈린을 얕보기 시작했다. 

 

지노베프와 카메네프는 트로츠키가 후계자가 되는 것을 꺼려했기에 스탈린의 편에 섰다. 그리고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그들은 침묵하였고 그로 인해 레닌의 유서는 공표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스탈린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간과하고 있었다. 그 후에도 그들은 트로츠키를 배격하고, 트로츠키도 그 두사람을 최대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를 틈타 스탈린은 자기편을 늘리고 있었다. 마침내, 1927년 지노베프와 카메네프는 결국 스탈린에게 굴복하고 당에서 제명된다. 트로츠키도 당에서 제명되어 유배 후 국외로 추방되었다. 스탈린은 과거 자신을 도와준 자들에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고, 스스럼없이 처형하였다. 

 

스탈린은 정부주도하에 모든 것을 관리하는 공산주의적 수법으로 소련에 중공업을 확립하려는 목적을 두고 제1차 5개년 계획에 착수한다. 소련의 군사적 대국화를 위해선 중공업이 가장 절실했다. 확실히 중공업화를 확립하여 1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인해 수많은 농민들이 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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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5개년 계획과 병행시킨 개인농장을 강제적으로 폐지하고 농민 모두를 콜호스, 솝호스라고 불리는 집단 농장에서 일하게 하였다. 이로인해 농민들로부터 식량을 징집하는게 수월해졌고, 많은 식량을 빼앗았다. 그리고 자본확충을 위하여 농민들로부터 식량을 대대적으로 조달하고 수출을 통하여 기초자금을 마련하려 하였다. 이에 반항하는 농민들은 쿨라크로 간주하여 처형하던가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이 수법은 과거 레닌이 농미들에게 행한 수법이다. 스탈린도 농민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맘대로 취급하였다. 계획을 달성하지 못하는 집단 농장에는 식량배급이 중지되었다. 이에 농민은 일하지 않게 되었고, 더군다나 기르던 가축들을 그대로 먹어버렸다. 저런 정부에 갖다 바치느니, 자신의 뱃속으로 넣는 것이 좋다고 자포자기하게 된 것이다. 그 후 1930년, 러시아 가축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러시아의 농촌은 파탄되었다. 

 

이런 내부적 균열 속에서, 트로츠키는 게속해서 스탈린 저항 기사와 연설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혁명 저서를 발간하고, 세계 여론을 통해 스탈린이 러시아혁명의 종점을 전체주의로 몰고 간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트로츠키가 발간한 [배반당한 혁명]과 [스탈린 범죄] 두 권의 책은 모스크바 재판의 수치를 드러냈다. 이에 화가 난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암살하기 위해 NKVD에게 지시를 내렸다. 

 

레프 트로츠키

 

멕시코시티에 있는 트로츠키의 가옥은 높은 벽과 경호원으로 철통같이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1940년 5월 24일 새벽 4시, 스파이가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기관총으로 트로츠키와 나탈야의 침실을 공격한다. 200발 이상의 총알이 결국 목표물을 놓쳤는데, 아이러니하고 놀랍게도 소련 공산당은 이 공격이 스탈린의 명성을 더럽히기 위한 트로츠키의 자작극이라고 떠들어댔다. 

 

트로츠키는 살아남았다. 그 해 여름, 스탈린에 관한 또 다른 책에 몰두하던 중 한 젊은이를 알게 되는데, 그 젊은이는 트로츠키를 매우 존경하고 있었다. 자신을 프랭크 잭슨이라고 소개하였는데, 본명은 제이미 레몬 메르카데르 허난데즈 이며 NKVD가 고용한 암살자였다. 1940년 8월 20일 매우 더운 여름날, 그는 트로츠키와 인사를 나눈 뒤 서재에 따라 들어갔고 자신이 쓴 기사를 감수해달라고 요청한다. 트로츠키가 책상위에 몸을 구부리자 그는 옷속에 숨겨두었던 얼음도끼를 꺼내 트로츠키의 머리를 내리쳤다! 트로츠키는 비명을 질렀고 그에게 달려들었으며, 결국 그는 트로츠키의 경호원에게 붙잡혀 멕시코 경찰에게 넘겨졌다. 

 

트로츠키 암살현장 범행도구

 

의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트로츠키는 60세의 나이로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허난데즈는 "공산주의 혁명에는 테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말은 트로츠키가 했던 말이였다. 

 

스탈린은 행동이 앞선 인물이였고, 트로츠키는 위대한 몽상가였다. 20세기 초, 러시아 두 지도자였던 스탈린과 트로츠키 사이의 권력투쟁은 한 사회가 창조자들이 우대받는 체제에서 관리자들이 특권을 누리는 체제로 이행하는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수학자이나 <붉은군대>의 창설자인 트로츠키가 음모가인 스탈린에게 밀려남으로써 창조자의 시대에서 관리자의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사회계층 구조에서 더 높이 더 빨리 올라가는 사람들은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을 유혹할 줄 알고 살인자들을 부릴 줄 알며, 정보를 왜곡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스탈린을 막을 수 있었던 유일무이했던 사람, 트로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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