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2월25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내건 17대 대통령. 광우병 촛불시위 부터 사면까지...

2025. 6. 29. 19:56그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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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2월25일, 전직 현대건설CEO이자 서울시장이였던 이명박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내걸고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강한 추진력과 기업가 정신을 내세운 그는 기존 정치 문법과는 다른 스타일로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그의 5년 임기와 이후의 시간은 기대와 논란, 성과와 단죄가 뒤섞인 역동의 기록이였다. 

취임 초기, '747공약'을 내세우고 실용정부를 선언한다. 연 7% 경제성장 /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 / 세계 7대 경제강국 진입.

하지만 이러한 장밋빛 계획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거대한 파도에 부딪히며 실현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졌고, 실제로 저성장 기조에 머물며 청년실업과 양극화 문제는 더 심각했다. 취임 초 가장 큰 정치적 위기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결정' 이였다. 2008년 봄,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 쇠고기 수입을 재개한다는 소식은 국민의 분노를 불러왔고, 촛불시위는 전국으로 번졌다. 이 사건은 단순한 식품안전 문제를 넘어 정부의 소통 부족과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저항으로 확산되었다. 

말도안돼는 4대강 사업. 이명박 정부의 대표 국책사업은 단연코 4대강 정비사업이다. 낙동강, 금강, 영산강, 한강에 보와 제방을 설치해 홍수예방과 수자원확보를 목표로 삼았지만, 약 22조원이나 투입된 초대형 프로젝트는 환경단체 및 전문가 다수가 '생태계 파괴'라며 비판하였고, 이후 우려한 대로 녹조발생, 수질악화, 유지관리비용 폭증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게 된다. 경제논리와 효율성을 강조한 접근이였지만, 환경적 지속 가능성과 절차적 정당성은 부족했다는 평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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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시절엔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위축됐었다는 비판도 있었다. 대표적 사건은, 'G20쥐그림 사건'인데, 한 대학강사가 G20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렸다가 기소되었다. 이에 네티즌 고발과 공안기관의 개입 등으로 "국가가 사소한 풍자까지 탄압"한다는 인상을 남겼다. 이는 정권의 과잉대응, 비판에 대한 불관용이 도마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본인도 뭔가 찔리는게 있긴 있었나보다. 

아울러, 이명박 정부 후반기에 국가정보원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온라인 여론 조작 정황이 드러난다. 문화*예술계 인사 중 진보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지원배제하였고, 국정원이 댓글조작을 통해 여론 유도를 시도하였다. 이는 정권이 민주주의의 기본인 여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의혹만 있다가 그쳤던 여러 혐의들이, 퇴임 후 폭발한다. 핵심은 BBK실소유주 논란과 DAS자동차 부품회사의 비자금 조성이다. 삼성 등 기업들로부터 80억원대 뇌물 수수, DAS 자금횡령 등 300억원대 비리혐의가 논란의 중심이였는데, 결국 2018년 1심에 징역 15년이 결정되고, 항소심에서 징역 17년으로 확정된다. 하지만 2020년 구속수감 이후 건강 문제로 가석방 되고, 2022년 윤석열에 의해 특별사면 처리된다. 둘이 엄청 친했나보다...

이렇게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평가한다면, 두 얼굴의 리더십이다. 이명박이라는 인물은 냉정한 실용주의자이자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리더였다. 하지만 동시에 민주주의 원칙과 공적 윤리를 훼손한 권위적 통치자이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은 성공과 실패 그리고 민주주의 경계선을 시험했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남긴 정책과 논란은 오늘날 한국 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되짚어보는데 중요한 자료로 남는다. 그의 성과를 인정하더라도, 절차와 도덕성없는 실용은 결국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다는 교훈을 남긴 대통령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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