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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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5*18 민주화 운동 발생;역사는 기억한다. 군부독재 반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이정표 ~ 5*18특별법, 신군부 지도자 처벌 등.
1979년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되고, 그 뒤 전두환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켜 군권을 장악했다(12*12사태). 1980년5월15일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이에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하며, 주요 인사와 학생운동 지도자들을 체포하였다. 5월18일, 오전 9시 전남대 학생들이 계엄령 철폐와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려 하는데 갑자기 계엄군이 나타나 강제로 해산되었다. 오전10시 학생들이 모여 도청앞에서 다시 시위를 벌이지만 공수부대의 폭력적인 진압이 시작된다. 오후 2시 공수부대가 시위 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고 체포하였는데, 주변 시민들도 이를 목격하고 분노하기 시작한다. 오후 5시 시..
2025.04.04 -
(1979년)부마항쟁; 거리로 나온 분노, 유신의 몰락! 단순한 학생들의 시위가 아닌, 시대의 외침이였고 '유신독재'를 끝내는 거대한 서막이였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은 '10월 유신'을 선포하고 정치적차원에서 민주주의 제도를 무시했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은 무제한 연임이 가능해졌고, 국민의 권리는 철저히 억압당했다. 이때부터 언론은 통제되고, 정부에 반하는 세력은 탄압당했다. 경제적으로 성장은 했지만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결국 'YH사건'이 발생하여 여성노동자들이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이다 전투경찰들의 강제진압으로 수많은 꽃들이 짓밟혔고 아울러 여성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에 분노한 당시 야당 총재 김영삼은 박정희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였고, 정부는 그를 국회에서 제명하였다. 결국 이 여론으로 그 불길은 부산과 마산까지 뜨겁게 달구었다. 10월16일,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거리로 나섰다. "유신철폐!" "독재타..
2025.04.02 -
(1976년)3월1일, 민주구국선언문 발표;김대중 감옥살이, "역사는 기억하는 자들의 것이다!", 유신철폐, 독재반대, 명동성당, 문익환목사 등.
1976년 3월 1일,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향한 중요한 발걸음인 3·1 민주구국선언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발표된다.1972년 10월, 박정희 정권은 10월 유신을 선포하며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유신헌법을 도입했다. 이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고, 언론과 집회의 자유가 억압받는 등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계와 재야 인사들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행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1976년, 3·1절을 기념하여 명동성당에서 열린 미사에는 약 2,000여 명의 신자와 교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미사 후, 이우정 교수가 재야 인사 10명이 서명한 '민주구국선언문'을 낭독한다. 선언문에는 긴급조치 철폐, 민주 인사 석방, 언론·출판·집회의 자유 보장, 의회 정치 회..
2025.03.27 -
(1960년)3*15부정선거~4*19혁명;김주열 열사의 희생과 419혁명의 진정한 가치. 자유당 이기붕vs민주당 장면, 이승만 하야!
언제나 부정선거를 일삼아 온 이승만. 특히 3*15부정선거는 당시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와 관련된 폭력적이고 부당한 선거조작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이것은 이승만 정권의 부패와 독재를 더욱 부각시켰고, 훗날 4*19혁명의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1950년대 후반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였다. 아울러 이승만 대통령은 여전히 정치에 대한 욕구가 강했기에, 자신의 자유당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부정선거를 자행하였다. 그의 자유당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선거조작을 시도하였는데, 기표소 안에 손을 잡고 들어가 표를 확인하는 3인조*9인조 투표와 투표함 바꿔치기 등을 벌였다. 또 선거 승리를 위해 유권자들에게 강압적으로 투표를 강요하거나, 부정투표와 가짜 유권자등록이 ..
2024.12.26 -
(1924년)서울대학교 전신 "경성제국대학"설립,정의부 "조선청년총동맹";교육이념을 벗어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정체성을 왜곡. 훗날 민주화운동의 전신이 된 조선청년총동맹 활동.
1924년에 일제는 서울에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한다. 일본제국이 식민지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설립하였으며 일본 제국주의의 학문적, 정치적 의도를 반영한 당시 조선에서 유일한 제국대학이자 조선인과 일본인을 함께 수용한 고등교육 기관이였다. 일본정부는 조선인 중에서도 일본의 식민통치를 수용하고 협조할 지식인 계층을 양성하여 친일적 인재를 육성하고 일본의 문화와 이념을 주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경성제국대학은 설립 당시 법문학부와 의학부 두 개의 학부로 시작하였으며, 이후 이학부가 추가되었고 각각의 학부에서는 법학, 문학, 의학, 자연과학 등의 학문을 교육하였다. 교수진은 조선인 교수도 있었지만 대부분 일본인으로 구성되었으며, 학생들도 초기에는 대부분 일본인이였으며, 점차 조선인 학생 수가 늘어날수록..
2024.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