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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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수원 화성 완성;정조와 정약용,화성을 축조한 이유,거중기,녹로,화성축조,수원화성 특징,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재.
정조대왕은 자신의 부친인 장헌세자의 묘를 옮기면서 읍치소를 이전하고 백성들도 이주시킬 수 있는 신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수원에 화성을 조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794년 2월부터 착공하여 2년 반에 걸친 공사 후 완공되었는데, 성곽전체 길이는 5.74km이고 높이는 4~6m의 성벽으로써 130ha의 면적을 에워사고 있다. 기록과는 다르게 여러 사견에 의하면,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노론세력들 대부분이 한양 4대문 안에 살면서 많은 권리과 기득권을 누리다보니 역대 왕들이 이들에 대한 견제를 제대로 못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한양 인근에 신도시를 하나 만들어서 집권세력들에게 집중된 권리들을 분사시켜 왕권강화를 노리고 계획한 것도 있으리라. 조선시대는 당최 전쟁과는 먼 나라였다. 당시 청나라는 건륭제 이래..
2024.05.30 -
(1443년)훈민정음 창제;한글창제,세종대왕,집현전학자들,한글날,세계문화유산 한글,삼강행실도,나랏말싸미 듕국에달라~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이전까지 조선에서는 중국 한자를 적거나 그 음만 빌려와 글을 썼다. 우리 조선말을 한자로 옮겨 쓰는 것은 무척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였다. 게다가 백성들은 한자를 배우기도 쉽지 않았다. 세종대왕께서는 이를 안타깝게 여겨 우리 음에 맞는 우리 글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정하셨다. 그런데 세종대왕의 뜻과는 다르게 이를 반대하는 신하들이 무척 많았다. 당연하겠지만, 백성들은 한자조차 모르는 무지깽이라서 부려먹기 좋고, 권세가들은 이미 한자에 익숙해진터라 여기에 새로운 문자를 새롭게 도입하여 사용하려는 것은 그들에겐 무척 불편한 일이고 또 백성들이 글을 알게되면 부려먹기도 까다로워 질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들은 왕께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드는 것은 큰 나..
2024.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