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제암리 학살사건;3*1만세운동에 대한 일제의 보복. 2007년 '아사히 신문'을 통해 공개된 우쓰노미야의 '그날의 일기', 스코필드 박사와 언더우드 선교사. 한국인의 독립의지와 저항정신!
이 전 글에서는 '3*1독립운동' 전후의 배경과 사건에 대해 소개했었다. 이번에는 3*1만세운동에 대한 일제의 보복사건을 다루고자 한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제암리 학살사건'이다. 1919년 3월 1일, 전국적으로 일어난 3*1운동은 일본의 폭압적 통치에 맞서 한국인들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중요한 사건이였다. 경기도 지역에서도 물론이고, 제암리와 그 인근 지역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이 3*1운동에 대한 일본군과 헌병의 반응은 매우 강경하였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일본군이 독립운동에 참여하거나 협조한 마을을 표적으로 삼아 잔혹한 보복을 가하였다. 이때 제암리도 일본군의 타겟이 되었으며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당시 화성지역 주민들은 송산면, 장안면, 우정면 등에서 만세시위로 독..
2024.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