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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남북 민간경제협의기구 제안;남북경협협의회,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개성공단기업협회,남북경협기업협의회,개성공단입주,금강산관광까지 ~
1978년6월23일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에 대하여 민간경제협의기구를 설치하자고 제의를 하였다. 6*23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 5주년을 맞아 경제협력 협의기구 구성을 북측에 제의하였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남북 동포의 복리증진과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북한당국이 이에 응해올 것을 바란다"고 말하였다. 그 후, 남*북간의 경제협력을 도모하는 다양한 남북민간경제협의기구들이 생겨난다. 1998년, 남북경협협의회가 출범되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함께 민간 차원의 경제협력을 추진하기 위해 출범되었으며, 현대아산과 같은 기업들이 주도하여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건설 등을 협의하였다. 현재는 남북관계 악화로 활동이 위축되었지만, 남북 경협이 재개되면 언제든 다시 활성화 될 것이다. 2000년, 남북경제협력추진위..
2025.03.31 -
(1978년)고성능전차 M48 양산 시작;M48패튼,K1전차,흑표전차,한국군전차의 발전.
M48전차는 원래 미제 M48 패튼(Patton)전차 시리즈로, 한국군도 1970년대부터 도입하여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개량형 M48A5K, K48A3K 등의 모델로 개발하여 105mm강선포를 장착하고 발전시켰다. 현재는 대부분 K1전차, K2흑표전차 등으로 교체되었지만 일부는 여전히 운용중이다. M48A3K모델은 M48A2C전차를 개량하여 업그레이드한 한국군 모델이다. 기존의 가솔린 엔진을 디젤엔진으로 교체하여 연비와 작전 지속능력을 향상시켰다. M48A5K는 1980년대에 개량한 모델로써 당시 한국군 주력 개량형이다. 기존 90mm강선포를 105mm강선포(M68)로 교체하여 화력을 강화하였고, 레이저 거리 측정기 및 탄도계산기능도 추가되었다. 역시 디젤엔진 적용으로 연료 효율성 및 작전범위가 향..
2025.03.30 -
(1977년)제23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 첫 종합우승!; 대한민국이 기술강국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 세계최고 기술강국 대한민국!
국제기능올림픽대회란 17세에서 22세까지의 세계 각 국 청년 기능인들이 참가해 서로의 직업 기능을 겨루는 대회다. 이 대회는 전 세계적으로 기능 인력 양성 및 직업교육 발전을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각 국은 자국의 기술력을 홍보하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1977년 당시 대회에서 한국은 금메달 12개+은메달4개+동메달5개로 종합우승을 하였다. 이 성과는 한국대표 기능인들의 뛰어난 기술력과 철저한 훈련의 결과였으며, 이후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기술강국으로 도약하는 기초가 되었다. 1970년대 한국정부와 기업들은 경제발전을 위한 기술인력 양성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었고, 기능장려법, 기능경기대회 및 직업훈련원 확대 등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대한민국은 제조업 중심의 경..
2025.03.29 -
(1976년)8월18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JSA(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군의 기습공격, 장교2명 사망, 8*18사태.
1976년8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발생한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이 사건은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 중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미군장교 2명이 사망하고 또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JSA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 근처에는 높이 15m의 미루나무가 자라 있었다. 이 나무는 유엔군 측의 제3초소에서 북한 측을 감시하는 데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는데, 유엔군은 시야 확보를 위해 해당 나무의 가지치기를 결정하였다.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경, 미군 경비중대장 아서 보니파스 대위와 소대장 마크 배럿 중위를 포함한 미군과 한국군 병력 총 11명이 한국인 노무자 5명의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고 있었다. 작업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군 박철 중위를 포함한 약 15..
2025.03.28 -
(1976년)3월1일, 민주구국선언문 발표;김대중 감옥살이, "역사는 기억하는 자들의 것이다!", 유신철폐, 독재반대, 명동성당, 문익환목사 등.
1976년 3월 1일,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향한 중요한 발걸음인 3·1 민주구국선언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발표된다.1972년 10월, 박정희 정권은 10월 유신을 선포하며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유신헌법을 도입했다. 이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고, 언론과 집회의 자유가 억압받는 등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계와 재야 인사들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행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1976년, 3·1절을 기념하여 명동성당에서 열린 미사에는 약 2,000여 명의 신자와 교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미사 후, 이우정 교수가 재야 인사 10명이 서명한 '민주구국선언문'을 낭독한다. 선언문에는 긴급조치 철폐, 민주 인사 석방, 언론·출판·집회의 자유 보장, 의회 정치 회..
2025.03.27 -
(1975년)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준공;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국회의원들이 있어야 할 곳/대한민국 민주주의/국회의사당 건축물.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은 1975년9월1일에 본관이 준공되었다. 이 건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표상이며, 앞으로 일어날 모든 국사를 논하고 결정하게 될 공간으로써, 국회의원들의 입법활동에 필요한 모든 편의시설을 갖추었고, 훗날 남북이 통일이 되어 양원제가 실시되더라도 그에 합당하게끔 사용할 수 있도록 그 모든것을 고려하여 구조를 설계하였다. 대한민국 국회는 처음에는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구 조선총독부 청사(중앙청)에서 사용되다가 1950년 6*25전쟁응로 인해 부산으로 이전하여 대한공론사 건물을 임시국회의사당으로 활용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서울로 복귀했었지만, 오랜기간 국회의 독립청사가 없어 여러 건물을 전전했다. 이에 따라 국회의 독립성과 상징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국회의사당 건립이 추진되었다. ..
202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