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6월15일, 남북공동선언 발표;평양에서 마주잡은 두 손, 6*15남북공동선언의 모든 것. "분단의 역사를 바꾼 그 날, 평화의 문이 열렸다."

2025. 6. 3. 18:35그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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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6월13일, 역사적인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이 전용기를 타고 북한 평양 순안공하에 도착한 그 순간, 그를 맞이한 건 다름 아닌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이였다. 전 세계 언론이 '분단이후 첫 남북정상회담' 이라며 일제히 주목했고, 남북한 8천만 민족은 가슴벅찬 기대 속에 6월15일 한 장의 선언문을 기다렸다. 

김대중 대통령이 도착 한 날, 수만 명의 북한 시민들이 도로 양옆에 늘어서 있었다. 꽃다발을 들고 박수와 환호로 맞이하며, 남북이 진심으로 화해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준 장면이였다. 그 모습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남북이 처음으로 '동등한 주체'로 만났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역사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6*15공동선언, 어떤 내용이었을까?

1. 우리 민족끼리 문제해결. 통일문제는 외세가 아닌 남북이 중심이 되어 해결하자는 약속.

2. 연합제VS연방제. 서로의 통일방안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단계적으로 협의해 나가기로.

3. 이산가족 상보. 전쟁 이후 생이별한 가족들의 만남을 실현시키기로.

4. 경제협력 및 교류확대. 남북 간의 경제적 협력, 금강산 관광과 철도 연결 사업 등 추진.

5. 당국 간 대화와 접촉 유지. 지속 가능한 관계 유지를 위한 상시 대화 채널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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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선언은 단지 종이 한 장이 아니였다. 분단 55년의 적대에서 협력으로 향하는 첫 공식적인 약속이였다. 6*15선언 이후,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었는데, 이는 2000년8월 최초 금강산 상봉이였다. 아울러, 경의선*동해선 철도 연결, 개성공단 설립 논의 본격화, 남북 경제*문화 교류의 문 개방 등등. 특히 이산가족 상봉은 방송 생중계로 진행되었으며 '살아있는 드라마'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수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울렸다. 

6*15공동선언은 완벽하지 않았다. 정권교체, 북핵문제, 안보 이슈 등으로 인해 이후 남북관계는 진통을 겪었고, 선언의 정신도 희미해졌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기억한다. 분단의 장벽 너머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한반도에도 평화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평화는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온다. 6*15공동선언은 오늘날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겨준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는 우리는, 언젠가는 다시 만나야 할 한 민족임을..."

그날의 악수를 기억하며, 다시 평화를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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