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제주 4*3사건 발발; 공권력 발아래 희생된, 끝나지 않은 한! "아 ~ 제주도여!"
광복 후 한반도는 미소 냉전의 전장이 되어 남북의 이념적 대립이 심했다. 특히 1947년 제주도에서는 남로당의 영향력이 컸으며, 미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강했다. 제주도민들은 남한 단독 정부수립과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반대했다. 이로인해 제주도에서 단독정부 반대시위와 무장봉기가 일어났다.1947년3월1일, 제주도에서 391절기념 제주도대회가 열렸고, 제주읍에서 북국민학교의 행사가 끝나자 군중들이 가두시위에 나선다. 가두시위 중 어린아이가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치여 다쳤는데, 이에 흥분한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했고 부근에 포진하고 있던 무장경찰들은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았다. 이때 주민 6명이 희생되었고,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3*1사건'이 시작되었다. '3*1사건'에 항의하여 3월10일부터 민관합..
2024.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