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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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아관파천,러일전쟁,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고립,대한제국 선포 등.
을미사변(乙未事變)은 1895년 10월 8일, 일본군과 친일 세력에 의해 명성황후(민비)가 시해된 사건이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이 더욱 커졌고, 조선정부는 일본의 압력 아래에서 갑오개혁을 추진하며 근대화를 시도하였다. 개혁과정에서 명성황후는 일본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는 것을 견제하려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한다. 결국 조선 내부에서 친일파와 친러파의 권력 투쟁이 심화되었고, 명성황후는 친러파를 지지하며 일본의 간섭에 저항하였다. 또 당시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경제개혁은 백성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일본의 경제적 착취가 더 심해졌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일본군과 낭인들이 경복궁을 습격하였다. 일본군과 낭인들은 건청궁에 침입해 ..
2024.07.16 -
(1863년)흥선대원군 집권;호포제,대전회통,육전조례,서원철폐,삼군부,쇄국정책,천주교대탄압,경복궁중건,명성황후,을미사변,아관파천 등.
1820년, 조선 말기의 왕족이자 정치가인 이하응이 태어난다. 그는 12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또 17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 후, 부모없이 정처없는 불우한 청년기를 보낸다. 이 시기엔 안동김씨가 왕실세력을 잡고 흔든 시절이기에, 이하응은 자구책으로 천하장안이라 불리는 시정의 무뢰한들과 어울리며, 안동김씨 가문에 원한을 품고 있던 조대비의 조카 조성하와 친교를 맺고 조대비에게 접근한다. 이하응은 서화에 능했는데, 특히 난초를 잘 그렸다. 이때는 철종임금 시절이라, 장차 후계자 없이 철종이 돌아가실 것을 염려하며 왕위계승 문제로 왕실이 불안하였다. 이하응은 조대비에게 자신의 둘째아들 명복(훗날의 고종)을 지명하기로 묵계하였고, 1863년 12월초, 철종이 사망하자 조대비는 12세인 고종을 왕위에 오르게..
2024.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