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국정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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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오페르트 도굴사건 발생! '쇄국정책' 자국수호의지VS'문호개방' 서구열강침탈시도. 통상수교거부정책.
1868년 5월, 독일 상인이였던 오페르트(Ernest Jakob Oppert)가 조선과의 교역을 성사시키기 위해 조선 정부를 협박할 수 있는 수단으로, 당시 조선에서 최고 권력자였던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의 묘를 도굴하여 이를 협상카드로 사용하려 하였다. 그는 프랑스 선교사 페롱과 함께 필립핀*중국*유럽*미국 등 여러나라의 무장한 선원들을 동원하여 충남 덕산에 있는 남연군 묘를 도굴시도. 그러나 묘는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석회로 관을 둘러 놓은 상태였고, 도굴 과정에서 현지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혀 도굴에 실패하고 퇴각하게 된다. 이 사건은 서구 열강의 침탈 시도와 조선의 국권수호의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으로, 당시 조선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조정에서는 군관 100..
2024.06.24 -
(1863년)흥선대원군 집권;호포제,대전회통,육전조례,서원철폐,삼군부,쇄국정책,천주교대탄압,경복궁중건,명성황후,을미사변,아관파천 등.
1820년, 조선 말기의 왕족이자 정치가인 이하응이 태어난다. 그는 12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또 17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 후, 부모없이 정처없는 불우한 청년기를 보낸다. 이 시기엔 안동김씨가 왕실세력을 잡고 흔든 시절이기에, 이하응은 자구책으로 천하장안이라 불리는 시정의 무뢰한들과 어울리며, 안동김씨 가문에 원한을 품고 있던 조대비의 조카 조성하와 친교를 맺고 조대비에게 접근한다. 이하응은 서화에 능했는데, 특히 난초를 잘 그렸다. 이때는 철종임금 시절이라, 장차 후계자 없이 철종이 돌아가실 것을 염려하며 왕위계승 문제로 왕실이 불안하였다. 이하응은 조대비에게 자신의 둘째아들 명복(훗날의 고종)을 지명하기로 묵계하였고, 1863년 12월초, 철종이 사망하자 조대비는 12세인 고종을 왕위에 오르게..
2024.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