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폭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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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년)갑자사화 발생; 연산군의 생모 폐비윤씨의 사망사건. 연산군 결국 복수하기로 결심하다 ~ !
무오사화를 겪은 후 조정엔 이렇다 저렇다 할만한 인재가 드물어지고, 조정도 제 기능을 발휘하질 못했다. 그저 폭군의 눈치만보는 간신배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빌빌대는 것이 전부였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연산군은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곤고히 하려 하였다. 국가 재정이 엉망이기에 공물 수량을 늘리고 공신들의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려 하였다. 이에 훈구파가 크게 발발하고 일어났다. 이때 외척 임사홍이 등장한다. 그의 간교한 성격때문에 크게 출세하지 못하고 숨죽이며 지내다가, 연산군이 훈구파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는 사이에 때맞춰 등장한 것이다. 그는 훈구파와 사림파 모두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과 함께 계획을 도모하였으며,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에 관한 일..
2024.01.20 -
(1498년)무오사화 발생;성군에서 폭군으로 돌변한 연산군!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다 ~ 훈구파의 간계, 사림파의 몰락.
연산군이 집권하던 조선전기 사회는 훈구파와 사림파가 대립하는 시기였다. 훈구파는 조선을 세운 일등공신의 후예들이였고 세조때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운 세력들이며, 사림파는 역성혁명에 반하여 지방에 은거한 자들이 과거를 통해 관리가 되어 결성된 세력들이다. 이런 배경으로 두 세력은 사상이 완전 달랐으며 서로 앙숙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러한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다. 처음 연산군이 왕위에 올랐을 때는 모두가 인정하는 성군과도 같은 존재였다. 부왕 성종때에 있었던 퇴폐풍조를 없애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는데 열중하기도 했다. 각 지방에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부패한 관리들을 색출해 내었고, 백성들의 안위를 살피며 열의 넘치는 중신들을 기용하기도 했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던 과거제도 뿐만 아니라..
2024.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