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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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1년)"측우기"는 누가 왜 만들었을까?;세자 문종의 획기적인 아이디어~ 유럽보다 200년이나 앞선 기술력! 역시 천재다!
벼농사 중심이였던 조선시대에서 "비"는 생존과 직결될 정도로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매일매일의 날씨 및 기후를 기록하였는데, 무지개와 우박, 빗물의 양까지 세밀하게 기록하였다. 측우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우택법"이라 하여, 땅 속에 스며든 빗물의 양을 호미나 쟁기로 파서 얼마나 빗물이 스며들었는지를 측정하였다. 각 도의 감사가 강우량을 집계하여 보고하면, 호조에서는 이것을 정기적으로 집계하여 기록하였다. 그런데 우택법은 땅이 건조하지 습한지에 따라 빗물의 스며드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있어 각 지역마다 강우량 비교시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위해 강우량을 측정할 수 있는 좀 더 합당한 기술이 필요했다. 이런 우택법의 한계점을 극복하고자 1441년에 '측우기'가 발명되었다. 측우기는 원..
2024.01.03 -
(1434년)양부일구와 자격루;정확한 시간이 없던 시절,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결실이 빛을 보다! 해시계, 물시계, 양부일구 시계, 강윤*강건 형
오늘날은 정확한 시간을 바탕으로 1분 1초를 다투며 살아간다. 하지만 옛 사람들은 천체에 의지하며 시간을 측정(?)하며 살아갔다. 대부분 농경에 종사했던 시절이라 시간 측정도 자연에 의지하며 살아갔던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동원하여 시간의 흐름을 파악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자연 현상에 의거하여 파악한 시간은 제각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정확한 표준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제반조치를 시행하였는데 이때 장영실의 공이 엄청났다. 양부일구와 자격루는 각각 '해시계'와 '물시계'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을 발명한 장영실은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다. 비록 신분이 미천(노비)하였지만 세종대왕께선 인재를 알아보시고 반대세력의 농간에도 불구하고 장영실을 무척이나 아끼셨다. 장영실, 조선 ..
2024.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