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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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조선물산장려회 창립, 육군 주만참의부, 신은행령;"우리가 만든 것 우리가 쓰자",조선 경제적 자립을 막기위한 일제의 만행.
일제는 우리나라의 쌀을 헐값게 사가고, 반대로 일본에서 생산된 물건들을 조선에 팔았다. 대량생산 된 일제의 제품들이 밀려들어오자 국내기업의 제품들이 경쟁에서 밀리게 되자, 민족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기 위해 '조선물산장려회'가 설립되고 [우리가 만든것 우리가 쓰자]라는 표어를 걸고 '물산장려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국내의 자본력을 키우고, 조선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각계각층 인사들이 뜻을 모았다. 물산장려운동은 쉽게 말해 우리 제품을 애용하자는 운동이다. 일본 상품 배척과 함께 조선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단순히 상품애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을 발전시키고 중소기업을 지원하며 민존 자본을 육성하는데 힘썼다. 서울에서 시작해서 전국적으로 활대되었으며 특히 여성과 학생들의 ..
2024.08.25 -
(1755년)을해옥사;나주괘서사건(윤지의 난)을 통해 소론을 몰락 시킨 영조. 그래도 어사 박문수는 특별히 신임하였다. 윤지의 비밀결사대, 능지
영조 즉위할 당시 이에 위기를 느낀 소론의 급진세력과 남인들은 영조의 정통성을 부인하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이들의 불만은 결국 무신난(이인좌의 난)으로 표출되었고, 무신난이 진압된 뒤 또다시 윤지가 주도한 '나주괘서사건(윤지의 난)'이 얼어난다. 이것이 1755년 을해년에 발생하였기에 '을해옥사'라고도 부른다. 나주괘서사건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1755년 2월4일 전라감사 조운규가 나주의 객사 망화루 벽에 익명의 괘서가 붙은 사실을 보고받는다. 괘서에는 '조정에 간신들이 가득차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는 내용이었다. 영조는 이에 대한 보고를 받고 필시 무신여당의 행위라고 짐작하고 괘서의 주모자를 색출하여 체포할 것을 명한다. 수사 7일만에 나주에 살던 윤지가 주모자로 체포된다. 윤지라는 ..
2024.03.31 -
(1635년)영정법 실시;오랜 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황폐해지고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으니 세금이라도 줄여주자~ 1결당 4두!
장기간에 걸친 오랜 전쟁으로 인해 조선 국토가 황폐해져, 경작지의 면적인 왜란 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더욱이 조선 후기에는 탐관오리들의 횡포가 심해 일부 관리들의 부정으로 인하여 국가 수입이 크게 줄어들었고, 농민생활도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서 삶이 궁핍해진 백성들이 도적이 되곤 했는데 그 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도적이 '임꺽정'이다. 이에 조정에서는 백성들의 수취제도를 개선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새로 농토를 개간하고, 버려진 농토에 다시 농사를 짓게 하여 경작지를 넓혀간다. 그리고 토지를 측량하고 '토지대장'을 새로 만들어 농경지 파악에 힘썼다. 조선 전기 세종대왕 시절엔 공법을 '연분9등법(풍흉기준)'과 '전분6등법(토지비옥도기준)'을 시행하였다. 쭉~ 이렇게 시행해오다가 인조때 '영정법..
2024.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