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래의 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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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진주 '임술농민봉기' 일어남;조선후기 농민봉기,유계춘,홍경래의 난, 삼정문란, 부정부패, 삼정이정청 설치.
조선 후기 사회는 삼정(전정, 군정, 환곡) 문란으로 인해 백성들의 생활이 매우 어려워졌다. 토지세가 과중히 부과되었고 관리들의 착복이 심했으며, 군포의 징수과정에서도 중앙권력과 연계되어 있는 부정부패가 빈번하였다. 단순히 암행어사 파견정도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였다. 또한 곡식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환곡제도는 관리들의 부정과 고리대금으로 변질되어 농민들에겐 매우 큰 고통이였다. 이 뿐인가? 연이은 흉년과 자연재해는 경제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농촌사회가 피폐해져 가는 가운데 농민들의 사회의식은 오히려 더욱 강해져 갔다. 이를 보다못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날 것은 뻔한 것이고, 결국 1862년 3월, 경남 진주에서 유계춘을 중심으로 농민들이 봉기하였다. 그들은 부패한 관리들을 처벌하고 ..
2024.06.19 -
(1811년)민중의 불만이 폭주하여 "홍경래의 난" 일어나다;최초 민중봉기,개혁의 필요성,정치부패에 대항하다!
조선후기인 1811년(순조11년)에 평안도 지역에서 홍경래가 주도한 반란이 일어난다. 이 반란은 조선 후기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불만이 폭증한 사건으로, 민중의 권리와 평등사회에 대한 열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1800년대에 들어서 조선은 세도정치가 이루어져 나라가 혼란스러운데다 자연재해 및 전염병까지 빈번하여 농민들이 살아가기가 매우 힘들었다. 여전히 노론계파가 권력을 독점하고 부패한 정치를 이어갔다. 이는 지방 사회의 불만을 고조시켰는데, 특히 평안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중앙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적었기에 차별을 많이 받았다. 무거운 세금과 고리대는 농민들의 생활을 어렵게 하였고, 평안도 지역은 상업이 발달했으나 중앙정부의 규제로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고초가 더욱 컷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2024.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