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5*18 민주화 운동 발생;역사는 기억한다. 군부독재 반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이정표 ~ 5*18특별법, 신군부 지도자 처벌 등.

2025. 4. 4. 22:09그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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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되고, 그 뒤 전두환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켜 군권을 장악했다(12*12사태). 1980년5월15일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이에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하며, 주요 인사와 학생운동 지도자들을 체포하였다. 

5월18일,

오전 9시 전남대 학생들이 계엄령 철폐와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려 하는데 갑자기 계엄군이 나타나 강제로 해산되었다. 

오전10시 학생들이 모여 도청앞에서 다시 시위를 벌이지만 공수부대의 폭력적인 진압이 시작된다. 

오후 2시 공수부대가 시위 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고 체포하였는데, 주변 시민들도 이를 목격하고 분노하기 시작한다. 

오후 5시 시위에 시민들이 가세하며 저항이 더욱 커지고 격확된다. 

5월19일,

오전, 학생들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시위에 동참한다. 

오후, 계엄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하고,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다.

저녁, 공수부대가 시위대뿐 아니라 주변 일반 시민들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고 연행해 간다.

5월20일,

오전, 계엄군의 폭력적인 진압이 계속되자 택시기사와 버스기사들이 차량을 몰고 시위에 가세한다.

오후, 공수부대가 도심 곳곳에서 시민들을 공격하며 시민들도 조직적으로 저항을 시작한다.

저녁, 도청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실탄 사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5월21일,

오후 1시, 도청 앞에서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하여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오후 3시, 분노한 시민들이 경찰서 및 예비군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장력을 갖추게 된다.(시민군 조직)

오후 5시, 계엄군이 시 외곽으로 철수하면서 광주가 시민들의 자치도시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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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2일~25일,

광주시민 자치기간이 지속되는 와중, 도청과 시청에 시민군 본부가 설치되고 병원에서는 부상자 치료가 계속된다. 이때 계엄군은 광주 외곽에 병력을 집결시키며 진압 작전을 준비한다. 

5월26일~27일,

계엄군이 도청 진압 작전을 예고하며 시민들에게 투항을 요구한다. 이튿날 새벽 3시,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공격하며 최후의 전투발생! 결국 도청이 함락되고, 시민군 지도부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체포된다.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자 수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되었고, 5*18 이후에도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는 곧 1987년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진다. 1995년 5*18특별법이 제정되어, 5*18관련자들이 재판을 통해 신군부 지도자(전두환, 노태우 등)들을 처벌하였고, 1997년에 '5월 18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여 민주화 정신을 기리고 있다. '5*18민주화 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며, 억압과 폭력에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당시 희생된 수많은 광주 시민분들께 숙연히 고개를 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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