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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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1945년)밀리환초 사건발생;강제징용학살,2024년 다케우치 연구가 진상발표. 인육사건, 조선인 218명 학살.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전쟁 초반에는 일본군이 승승장구를 했고, 일본은 태평양이나 그곳 작은 섬들의 지형을 활용해서 일종의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쓰려고 하였다. 그래서 이런 섬들을 활용해 미군을 제압할 수 있는 해상권이나 제공권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대규모 군사시설을 확충하고 여기에 투입될 인력에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하였다. 밀리환초(Mili Atoll)는 남태평양 마샬제도의 환초로 약 92개의 산호초 군집 가늘고 둥근 띠 모양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당시 일본군의 최전방 요충지였다. 1942년 초, 부산항에서 조선인 2400여명을 해군 군속 신분으로 태우고 출발해 전남에서 동원된 800여명은 밀리환초에 내려주고, 나머지는 다른 섬에 내려줬다. 밀..
2024.10.06 -
(1911~1914년)토지조사사업 실시 및 지세령 공포;일제식민지 정책의 퍼스트 카드 ~ 경제수탈. "머지않아 조선땅은 모두 우리것이 된다!" 당시 대표적 친일파 9인(이완용,윤치호,김활란,노덕술,이근택,김갑순,배정자,민영위,방응모)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일본은 한국의 경제를 장악하고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도한다. 그 첫번째가 조선의 토지소유 관계를 명확히 하고 농업생산성을 높이며,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했다. 토지조사사업은 1910년~1918년까지 계속 진행되었으며, 토지 면적, 위치, 소유권, 용도 등을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토지대장을 작성한다. 토지 소유자들에게 자발적으로 토지소유를 신고하도록 했고, 입증되지 않거나 신고되지 않은 토지는 정부로 귀속시켰다. 조선의 수많은 농민들은 문맹이거나 복잡한 절차를 이해하기에 지식이 많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토지 소유권을 제대로 신고하지 못한 농민들이 부지기수였다. 이로인해 많은 토지가 일본인이나 친일파에게 ..
2024.08.04 -
(1885년)톈진조약, 한성조약, 영국의 거문도 불법점령;나날이 위축해지는 조선의 주권. 결국 국제 외교정세에서 조차 초라해지다...
19세기 후반엔 조선과 관련된 여러 조약과 사건들이 조선의 국제적 위치와 내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85년 청나라와 일본 사이에 체결된 톈진조약은 갑신정변(1884년)이후 조선에서의 양국의 군사적 개입을 규제하고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체결되었다. 갑신정변 당시 급진개화파가 청나라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일본의 지원을 받아 조선을 근대화하려고 시도했지만 3일만에 끝나버리고, 이후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여 내정에 깊이 개입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를 조정하기 위해 조약이 필요하였고 1885년 톄진조약이 체결된다. 톈진조약의 주요내용으로는,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에서 자국 군대를 철수하기로 합의한다. 만약 조선에 군대를 다시 파견할 경우 서로에게 미리 통보하고 협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2024.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