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애국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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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조선어학회 창립, 한인애국단 수립;우리말 보존, 한글맞춤법 통일 및 <우리말큰사전>,영화 말모이, 백범 김구, 윤봉길, 이봉창 의거. 광복군 창설의 기반.
1931년엔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한국어와 글을 사용하는 것을 단속하고 금지시키고 일본어 사용을 강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지식인들은 일제의 눈을 피해 우리 모국어를 살리고 보존하기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1년에 이윤재, 이극로, 최현배 등의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어학회'가 창립되었다. 원래 1921년에 조직된 단체 '조선어연구회'가 모태가 된다. 조선어학회는 우리 한국어의 연구와 보존, 보급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그 안에 표준어를 정립하고 맞춤법을 통일하고, 국어사전 편찬 등 주요과제를 이루어나갔다. 1933년 조선어학회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였고 이것은 현대 한국어 표준 맞춤법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조선말 큰사전]을 편찬하였는데 이것은 안타깝게도 일제의 ..
2024.09.05 -
(1919년)고종황제 사망, 3·1 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의열단 창단, 기미 독립 선언서, 2.8 독립 선언. 의열단 김상옥, 나석주. 김구의 한인애국단.
1919년1월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사망한다. 이는 민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동시에 3*1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해 독살되었고 믿었고, 일제에 대한 반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한 기록에 의하면 고종의 시신 상태는 처참했다고 한다. 팔다리가 심하게 부어올라 바지를 찢어야만 했고, 치아가 모두 빠진데다 혓바닥도 닳아져 있었다. 또한 30cm 가량의 검은 줄이 목에서 복부까지 나 있었다. 이는 법의학적으로 명백히 독살을 의심해볼 수 있는 상태다. 1919년 한일강제합병이 일어난지 10년 뒤다. 고종은 이미 퇴위한 상태였는데, 당시 파리강화회의에 의친왕과 하란사를 밀사로 파견하여 황실의 독립의지를 알리고자 했다. [구라토미의 일기]에는 고종황제가 ..
2024.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