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16. 17:07ㆍ그날의 이야기
연산군이 집권하던 때, 중종과 윤임은 개인사가에서 함께 공부하던 교우가 두터운 사이였다. 또 윤임은 훗날 중전인 윤비의 오빠다. 중종과 윤비 사이에서 인종이 태어났는데, 인종을 출산하다가 윤비가 산통으로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이에 윤임은 중종을 찾아가 중전이 출산하다 세상을 하직하였으니 다시 자신의 가문에서 새로운 중전을 들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한다. 중종은 윤임의 부탁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에 윤임은 자신의 조카뻘 되는 아이를 중전으로 들이게 되는데, 이 아이가 훗날 '문정왕후'다. 중종과 문정왕후 사이에서 경원대군(명종)이 태어난다. 문정왕후는 본래 인종을 친아들처럼 보호했는데, 막상 자신의 혈육을 낳고 보니 자신의 아들 명종을 왕위로 올리고 싶어하며 태도가 돌변한다. 이렇게 되자 인종을 보호하던 윤임과 문정왕후는 적대적 관계가 된다.
윤임은 김안로와 손을 잡고 문정왕후를 내쫓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문정왕후는 자신과 왕자를 지키기 위해 그들과 목숨 건 투쟁을 계속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김안로를 숙청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정적인 윤임이 굳건히 버티고 있기에 절박한 심정으로 동생 윤원로*윤원형을 앞세워 윤임을 상대하게 한다. 세간에서는 윤임을 대윤이라고 불렀고, 윤원형 형제를 소윤이라고 불렀다. 대윤의 힘이 세자로부터 비롯되었기에 문정왕후는 세자를 제거해야만 윤임을 제거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동궁전이 소실되는 화재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결국 문정왕후가 시켜서 발생한 일이라는 의견이 많다. 암튼 이런 대립이 극에 달하는 사이 중종이 사망한다. 결국 그녀의 방패막이가 사라지고 동시에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앉기는 커녕 세자 인종이 용상에 앉게 생겼다. 그렇게 그녀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1544년 11월 인종이 즉위한다.
윤임은 이때다 싶어 문정왕후와 그 아들을 제거하려고 혈안이 되었지만, 당시 왕위에 앉은 인종은 매우 어질고 효심이 지극한 인물이였다. 인종은 계모 문정왕후를 안심시키기 위해 정말 노력을 많이 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인종의 건강이 매우 나빠지자 이에 문정왕후는 다시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앉힐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인종은 30세에 왕위에 올랐는데 아직 자식이 없으므로, 그대로 인종이 죽게 된다면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1545년 6월 27일. 인종의 병이 깊어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런데도 인종은 계모를 챙겼으니 그의 효성이 정말 지극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일 후 인종은 경원대군에게 왕위를 넘기고 다음날 7월 1일에 숨을 거두고 만다... 문정왕후는 드디어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었다. 조선 13대 왕 명종! 그때 그의 나이 겨우 12세였으니 모든 왕권은 문정왕후의 차지가 되었고 수렴청정이 시작된다. 명종은 나이는 어렷지만 어머니 문정왕후와는 달리 성정이 착하고 순했다. 이처럼 마음이 여리고 효심이 극진해 문정왕후의 의견에 어떠한 토도 달지 않았다. 심지어 궁궐내의 사소한 것 조차도 모두 문정왕후의 허락을 받곤 하였다. 한편 문정왕후는 권력을 쥐자마자 피바람을 일으킨다. 윤임 세력을 제거하기로 ~
문정왕후가 권력을 쥐게되니 자연스레 다시 명종의 외척인 윤형원 일파가 실권을 잡게되고, 그들은 윤임 일파를 숙청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음모를 꾸몄다. 이러한 과정에서 윤임 일파를 더욱 신뢰하고 따르던 사림들도 대거 화를 입었는데 이때가 을사년이라 하여 "을사사화"라 부른다. 문정왕후를 등에 업은 윤원형 일파는 대윤 세력을 역적으로 100여명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1547년, 양재역에 벽서 하나가 붙어 있다. <<위로는 여왕, 아래로는 간신 이기가 권력을 휘두르니 나라가 곧 망할 것이다!>> 윤원형은 이를 계기로 윤임의 나머지 잔당들을 제거하는 기회로 삼고 또 다시 혈풍을 일으키는데, 이것을 두고 '정미사화'라고 부른다.
견제 세력이 모두 사라진 윤원형 일파. 그는 권력을 독식하며 애첩 정난정과 함께 매일 주색을 즐기고 엄청난 뇌물을 받아가며 자신의 욕심을 챙기기에 혈안이었다. 하지만 어린 명종은 그 모든 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왕권과 조정은 완전히 문정왕후 손에 떨어졌으며, 세간에서는 그녀를 여왕이라 불렀다. 문정왕후는 1565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왕권을 쥐고 흔들었다.
"너를 왕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나다! 그런데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으니 그것이 자식의 도리라 할 수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