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년)기묘사화 발생;왕도정치를 추구했던 중종. 사림파를 대거 등용하였지만 조광조는 너무 무섭다~ 주초위왕!

2024. 1. 27. 22:01그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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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구세력에 의한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 왕위를 이어받게 해준 일등공신인 박원종*성희안*유순정이 삼정승을 모두 장악하면서 그 위세가 하늘을 찔럿다. 중종은 또 반정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성리학에 입각한 '왕도정치'를 지향했고, 훈구세력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동안 밀려나 있던 사림세력들을 점차적으로 등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성리학을 기반으로 이상적인 정치실현을 위하여 젊은 사림들을 다수 등용하였다. 그들을 견제와 간언을 주로 하는 삼사에 배치해서 왕도정치 실현을 위한 파트너로 삼았는데, 이들 중 34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중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사림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조광조'다. 

조광조는 한양출신으로 개국공신 조온의 5대손이다. 17세때 무오사화로 평안도 희천에 유배중이던 김굉필에게 수학하였다. 김굉필은 신진사림세력의 상징이였던 김종직의 뒤를 이은 인물로써 이를 통해 조광조는 김종직-김굉필로 이어지는 사림파의 정통계보를 잇게 된다. 조광조는 성리학의 도학정치를 통해 왕도정치를 추구하였는데, 신진사림에 의해 성리학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도학에 대한 관심이 점차로 높아져가게 되었고, 이러한 도학적 성향을 본격적으로 표방하고 발휘하였고, 그를 영수로 하는 학파가 기묘사림세력이다. 이렇게 형성된 조광조 일파의 개혁정치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도학정치 구현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하여 현량과를 실시하였고, 중종반정 공신들을 중용함으로써 그들 가운데 16명은 뚜렷한 공로가 없으니 삭제해야 한다는 '위훈삭제'사건을 일으켰다. 조광조가 앞장서서 위훈삭제 문제를 제기하자 중종과 훈구세력들은 강하게 반발하였다. 또 조광조는 공신이 너무 많다고 하며 반정공신들이 취하고 있는 이득에 관한 제도를 정비해야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이득에 관한 제도를 개정하지 않으면 조정의 재정이 어려워질 것이고, 결국엔 백성들에게 커다란 손실을 줄 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 어려워질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러한 잘못된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4등공신'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은 위훈삭제하고, 2,3등 공신도 선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조광조 일파의 강력한 주장에 밀려 결국 전 공신의 4분위 3에 해당되는 76인의 훈작 삭탈과 토지 및 노비환수를 윤허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전체 반정공신의 약 3/4에 해당하는 공신들을 포기하였다. 

훈구세력들은 조광종와 기묘사림파 세력이 나날이 커지자 이를 견제하기위해 후궁들과 결탁한다. 또한 백성들이 조광조를 왕으로 삼으려 한다는 손문을 퍼드리고, 왕 앞에 나아가 조광조를 지금 꺾지 않으면 훗날 골칫거리가 될 거라며 조광조와 사림세력들의 기세를 꺾어야 한다고 간청하였다. 한편 홍경주, 남곤, 김전, 고형산, 심정 등은 은밀히 왕을 만나 조광조 일파가 붕당을 조성하여 임금을 속여 국정을 어지럽히고 있기에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중종은 결국 사림세력을 치죄토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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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 김정, 김구, 김식, 윤자임, 박세희, 박훈 등이 투옥되었고, 이를 반대하기 위해 성균관 유생 1천여명이 광화문에 모여 조광조 무죄를 호소하였다. 결국, 조광조는 능주에 유배되었고, 김정, 김준, 한충, 김식 등도 귀양갔다가 사형되거나 자결하였다. 또 안당과 김안국, 김정국 형제 등은 파기되었다. .

정리를 하자면, 무오사화*갑자사화롤 권력의 중앙에서 밀려나 숨죽이고 있던 사림. 중종이 왕위에 오르자 기세 등등한 훈구세력들을 견제하고자 사림세력 대거 등용. 사림세력 측에서 개혁정치를 너무 강하게 밀고 나오자 이에 질려버린 중종이 사림세력까지 견제하기 시작했고, 이를 눈치 챈 훈구세력 측에서 조광조가 반역을 꾀한다는 이상한 소문을 퍼뜨려  사림세력들이 하나둘 숙청됨. 결국 조광조도 제거됨. 곧 임금과 훈구세력이 짜고 조광조를 제거해버림. 이게 기묘사화다!

임금 앞에서 시험 보는 '알성시'
임금 : 공자의 이상정치를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조광조 : 하늘과 사람은 그 근본됨이 하나입니다. 하여 하늘이 사람에 대하여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임금과 백성도 하나입니다. 상고하건데 이상적인 임금들이 백성들에게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조광조는 덕에 의한 정치/왕도정치를 지향했으며, 아울러 임금 또한 부지런히 공부를 하라며 경연을 강화했다. 붕당의 단초를 만들게 되는 '이존전랑' 권한을 강화시키고 삼사의 권한도 강화시켰다. 소학과 주자가례를 장려하고 향약을 보급하여 향촌사회의 사림화를 이루어나가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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