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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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국회 프락치사건 그리고... 반민특위(반민족행위조사특별위원회) 실패.
1948년11월20일, 총99명의 국회의원은 '미군 주둔에 관한 결의안'을 발의하여 통과시킨다. 당시 최윤동 의원은 "미군은 여순사건과 대구사건을 진압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만약 미군이 없었더라면 국군은 전멸당했을 것이다."라고 발언하였다. 이승만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강력한 반공체제를 구축하였는데, 군 내부적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하는 '숙군작업'을 벌였고, 12월1일에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하여 사회 전반에 걸쳐 좌익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처벌을 강행하였다. 1946년 [반민족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설립된다. 친일파를 조사 및 색출하고 그들을 심판하고 청산하는 것이 목적이다. 미군정시기에는 각 관서마다 친일관료들이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활동하다가, 미군정 시기가 끝나고 대한..
2024.11.24 -
(1948년)5*10남한만의 총선거실시,헌법공포(제헌절),대한민국정부출범 그리고 조선인민공화국 설립;이승만,김일성 ~ 북한 동포들을 향한 아쉬움.5대국경일.
1948년5월10일, 38도선 이남지연에서 UN위원단의 감시하에 남한만의 민주적 총선거가 실시된다. 이때 김구와 김규식 등 좌익에서는 이 단독선거를 반대하면서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어쨋든 선거결과 198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었고, 초대 국회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여 공포하였다. 7월17일은 [제헌절] 곧 헌법을 제정*공포한 날이다. 제헌절은 대한민국 5대 국경일 중 하나로써, 이날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헌법의 제정(7월12일) 및 공포(7월17일)를 전 국민이 경축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여 헌법수호를 다짐한다. 참고: 5대국경일 - 3-1절/7월17일 제헌절/8월15일 광복절/10월3일 개천절/10월9일 한글날.헌법을 제정한 후 7월17일에 헌법을 공포한 이유는, 조선왕조 건국일이 7월..
2024.11.11 -
(1946년)남북분단의 기초가 형성되는 시기; 남조선국방경비대(대한민국국군의 모체)창설. 미소공동위원회는 흐지부지, 이승만의 정읍연설.
1946년은 한반도에서 남북 분단의 기초가 형성되는 시기였다. 미군과 소련의 한반도 점령정책과 각 지역 주요 정치적 공작이 만발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속에서 남과 북의 정치적*군사적 대립이 심화되었다. 당시 미군이 한반도를 통치하면서 미군은 공산주의 세력 확산을 방지하고 군사적 안정성을 확보할 필요에 의해 남조선국방경비대라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군을 창설하였으며, 이는 1개연대규모로 미군정하에 창설하였으며 대한민국 군군의 모체가 된다. 이후 대한민국 국방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첫걸음을 하였다. 한국전쟁을 대비한 방어체계를 갖추어 남한의 독립적인 군사력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북쪽에서는 소련의 지원아래 김일성 중심의 공산주의 정부가 정착되어 가고 있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창설..
2024.10.29 -
(1904년)러일전쟁 발생, 한일의정서;동아시아의 패권균형의 변화, 일본의 조선식민지화, 만주지역 패권, 뤼순전투, 쓰시마해전, 포츠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러시아와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영향력 확장을 위해 경쟁하는 구도였다. 두 나라는 특히 조선과 만주지역에서 패권을 두고 종종 갈등을 빚었었다. 당시 중국은 의화단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열강에 선전포고를 한 의화단은 1901년 베이징 의정서를 결과물로 진압되었다. 이 결과 일본은 베이징에 군대를 주둔할 권리를 얻고 배상금도 지불받게 된다. 한편 러시아는 만주지역 철도가 의화단에게 공격당하는 문제로 만주를 점령하게 되는데, 청조와 협의한 것과 다르게 퇴각하지 않는다. 이에 러시아와 일본은 4차례에 걸쳐 교섭을 하였다. 러시아는 만주지역의 자국의 배타적 권리를 보장받고 조선의 북부 중립화를 원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이 독점적 영향력을 조선에서 행사하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4.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