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20. 21:51ㆍ잡다한 지식
텔렘수도원은 르네상스시대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프랑수아 라블레의 소설 '가르강튀아'에 나오는 가상 수도원이다. 방이 9332개가 되는 거대한 텔렘수도원은 루아르 강변의 포르 위오 숲에 건설되어 있으며, 각 건물은 7층 높이로 지어지고, 모든 하수도는 강으로 연결되어 있다. 도서관이 여러 곳에 있고, 중앙에는 연못이 있으며, 미로 모양의 포도를 갖춘 공원도 있다. 얼굴이 아름답고 몸매가 좋으며 훌륭한 성품을 가진 선남선녀들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양질의 교육을 받고 고상한 사교계에서 지내던 자유인들이었으므로, 이곳의 규칙은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 였다.
텔렘수도원에서는, 원생들 상호간에는 아무 의무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최고의 지도자 한사람(만인의 의지 대변자)에게만 철저하게 복종할 의무가 있었다. 자기들기리는 동등하지만, 자신들을 동등하게 만들어준 그 대상에게만은 결코 동등할 수 없었다.
라블레는 '가르강튀아'에 묘사된 텔렘 수도원을 통해 자기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통치기구가 없다. 자기 자신도 다스릴 줄 모르거늘, 어찌 남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통치하는 자가 없으므로 수도원의 공동생활자들은 자기가 바라는 바에 따라 행동한다. 거주자들은 각자 하고싶은 일들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일할 마음이 나면 일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쉬고, 마시고, 놀고, 사랑을 나눈다. 시계가 없으므로 시간의 흐름은 잊고 산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는다. 소요, 폭력, 분쟁 따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힘든 일은 수도원 밖에 사는 종복들과 장인들이 맡는다.
라블레는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의 이상적인 수도원이 언젠가는 하찮은 것을 얻기 위한 터무니없는 주장과 선동과 불화 때문에 붕괴되고 말 것임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것의 건설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했다.
단, 자기들끼리는 동등하지만, 자신들을 동등하게 만들어준 대상에게는 결코 동등할 수 없다는 면이 한번 생각해 볼 만 하다. 이것이 텔렘 수도원 우화의 본질이긴 한데, 보수주의 철학자들은 이 우화에서 사회주의 사상의 본질을 간파한다. ‘구체제’건 ‘적폐’건 어떤 명칭을 내세우건 간에 모든 사회주의 사상은 언제나 기존 체제, 기성세대, 하여튼 모든 것에 반항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이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자면 사회주의 사상 그 자체까지도 의심하고 비판하고 반항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텔렘 수도원의 역설처럼 사회주의자들은 높은 곳의 한 사람에 대한 ‘평등’은 유보한 채 평등을 말하고, 자신들에 대한 비판은 원초적으로 차단한 채 다른 모든 것을 비판한다.
잘생기고 집안 좋은 선남선녀만 거주자로 받아들였다는 텔렘 수도원의 기준 역시 사회주의 또는 전체주의 체제를 강하게 연상시킨다. 사회주의는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 배려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지만 실은 건강하고 잘생긴 좋은 집안 출신만을 국민으로 인정하는 냉혹한 체제로 타락했다. 북한 체제가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평양에는 장애인이 들어올 수 없고, 모든 지배층은 당성이 좋은 집안 출신이어야 하며, 최고지도자는 백두혈통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