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9. 22:04ㆍ잡다한 지식
아담파는 기독교의 이단이다. 1420년 보헤미아에서 교회의 개혁과 독일 영주들이 퇴진을 요구하는 신교의 선구자 후스 파 신자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그들 중에서 급진적인 한 집단이 떨어져 나왔는데, 이것이 아담 파 신자들이다. 아담파는 교회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그들이 보기에 신에게 다가가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초의 인간 '아담'으로 돌아가 아담과 똑같은 조건에서 사는 것이었다. 이들은 세속의 굴레로부터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동시에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하나님의 왕국을 영원한 즐거움과 환희의 왕국으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프라하에서 멀지않은 블라타바 강 한복판에 자리를 잡고, '나체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재산을 공유화하고 아담이 죄를 짓기 전의 지상낙원의 삶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종교 의례를 할 땐 옷을 입지 않았고 공동체 안에서 집단 혼숙도 마다하지 않았다.
모든 사회제도가 철폐되었으며, 화폐*노동*귀족*계급*자산*정부*군대 따위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경작을 삼가고 야생 열매와 채소만을 먹는 채식 생활을 했다. 이러한 급진주의를 탐탁치 않게 여기던 후스 파 신자들은 그들의 지나친 행동을 더이상 묵과할 수 없었다. 신에 대한 예배를 간소화하는 건 이해하겠지만, 아담파의 경우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후스파의 영주들과 그들의 군대는 블라타바 강에 있는 섬을 포위하고, 때를 잘못 만난 그 히피들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 학살하였다.
그런데 이런 사례가 아담파만 있는 것은 아니다. 13세기 네덜란드의 '자유영혼의 교우들', 14세기 독일의 '베긴회' 등도 모두 그러했다. 베긴회는 보헤미아 네샤르카 섬을 점거하고 종교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이들을 '피카드파'라고 한다. 피카드파는 나체 생활을 하며 결혼과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자유연애를 했다. 이들을 두고 '신 아담파'라고 불리는데, 결국 후스파에 의해 1421년 피카드파도 토벌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신아담파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곳곳의 넓게 퍼졌다. 신아담파는 성변화, 성찬을 부정했기에 카톨릭이 후스파를 증오했듯 후스파도 신아담파를 증오했다.
1781년 이후 신성로마황제 '요제프 2세'의 관용으로 신아담파가 잠깐 부활했는데, 1849년 오스트리아 정부는 보헤미아 지역의 신아담파 잔당을 모두 토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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