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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 27. 20:58잡다한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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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

타인에게 신경을 크게 쓰는 성격일수록 공황장애를 겪게 될 확률이 크다고 한다. 물론 신체적 질병에 의해서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대체로 성격 탓이 크다고 본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 타인까지 신경 써 가며 살아간다면, 심리적으로도 또한 신체적으로도 그 피로도가 배가 될 것이다. 사회는 정해진 규칙에 의해 돌아가겠지만, 그 사이사이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타인들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회에 우리는 살아간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을 결코 모른척 할 순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지만, 어느순간 자신도 모르게 발작을 일으키는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무리 속에 섞여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으며 잘 융화되는 것이 미덕이라 여긴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 한 것일테고, 결국 공황발작에 대한 두려움과 예기불안을 겪을 때도 타인을 의식하면서,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지레 겁먹으며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공황장애를 극복하려면 일차적으로 타인에 대한 신경을 자기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고자 노력해야 한다. 

 

타인의식_공황장애

 

'나는 누구인가' 

~의 아들(딸), ~의 아빠(엄마), ~회사의 직함, 직업, 직책 등은 모두 외부적 기준으로 자신을 정의한 것이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높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좋은 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큰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을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 이처럼 외부 기준에 의해 자신을 정의해 왔기에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을 정의해야 옳은 것일까?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강점을 찾아 그것을 나만의 기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 나아갈 때 우리는 자신감과 긍지, 내면의 힘, 용기가 생긴다. 자신 스스로에게서 빛이 난다면 어느 곳에 가든지 빛나는 사람이 된다. 타인이 나를 어둡다고 비난한다고 해도 나는 빛이 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 

 

'타인이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하라'

타인과의 경쟁? 출발점도 다르고 심지어 종목마저 다른데, 그것을 경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각자 고유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을 강점으로 삼고 그것을 즐기는 마음으로 갈고 닦아야 한다. 각자의 무기가 다른데 타인의 기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에 대한 명제가 명확해지면 더이상 두렵거나 불안할 이유가 없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내부기준을 굳건하게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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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되고 싶은 것은 타인의 생각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 사람이다. 타인의 시선 뿐 아니라 타인의 가치관이나 구속에도 절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 오직 나로 존재하는 사람. 사람은 각자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다. 각자의 세상이란 인간으로서 오감으로 세상을 인지할 수 있을때 까지다. 죽음이 다가와 오감을 완전히 잃어버린다면 각자의 삶은 끝이다. 내가 위인이여서 후대에 계속 회자된 들, 잉영인간이어서 죽음과 동시에 잊혀진들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왕 무(無)에서 존재하여 일생동안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오직 자신의 잣대로 평온함을 유지하며, 자다가 소멸하게 되는 것을.

 

타인의식에서 해방_자유

 

1961년 미국의 아쉬교수는 어떤 실험을 위해 7사람을 방에 모았다. 그는 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지각에 관한 실험'을 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7명 중 진짜 실험대상은 단 한명 뿐이였고, 나머지 6명은 교수를 도와주는 스태프였다. 스태프들의 역할은 진짜 피실험자가 실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였다. 피실험자가 마주보는 벽에 직선 두 개를 그려 놓는다. 직선 하나는 길이가 25cm, 다른 하나는 30cm이다. 두 직선은 나란하기 때문에 30cm가 더 길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아쉬교수는 각자에게 어느 선이 더 긴가 하고 묻는다. 6명의 스태프들은 25cm가 더 길다고 대답한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으로 진짜 피실험자에게 묻는다. 그런 식으로 실험을 한 결과, 진짜 피실험자들 중에서 25cm 직선이 더 길다고 응답하는 경우가 60%에 달했다. 또 30cm가 더 길다고 응답한 사람들도 스태프들이 비웃으며 놀려 대면 30%는 다수의 기세 눌려 처음의 응답을 번복하였다. 

 

아쉬교수는 대학생들과 교수 100명을 상대로 같은 실험을 또 하였다. 이번엔 타인의 말에 쉽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았다. 그런데 결과는 그들 중 90%가 25cm 직선이 더 길다고 응답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피실험자들에게 그 실험의 의도가 무엇인지 밝히면서 다른 스태프들도 교수와 미리 짜고 실험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피실험자들에게 알려주어도, 그들 중 10%는 여전히 25cm직선이 더 길다고 고집을 부린다는 거였다. 또 어쩔수 없이 자기들의 실수를 받아들인 사람들도 타인들이 다 그러기에 자기도 따라 했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기 보다는, 자기들의 시력이나 관찰 각도를 문제 삼으면서 갖가지 변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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