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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 24. 21:05잡다한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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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숫자 0(영)은 인도에서 유래하였다. 7세기에 페르시아는 인도의 영을 모방하였다. 그 후 아랍인들이 페르시아로부터 그 수를 빌려왔고, 그것에 우리가 알고 있는 '영'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3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의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의 소개로 0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피보나치는 사람들에게 0의 개념이 얼마나 유익한지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0이 기존의 몇몇 개념에 수정을 가한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교회는 0이 너무 많은 개념들을 뒤엎는다고 판단했다. 

 

어떤 종교는 숫자 0이 악마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사실, 어떤 수와 곱하든 그 수를 無(없음)로 만들어 버리는 0은 사탄의수라고 오해받을만도 했다. 사람들은 숫자 0이 자기에게 접근하는 모든 것을 0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해서 대단히 파괴적인 수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1은 대단히 고결한 수로 생각되었다. 1은 자기와 곱해지는 수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교회는 0(영)의 개념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훌륭한 회계가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에, 0을 사용하는 물질주의적인 이점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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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비었음'  '없음'  '시작'...

 

10, 50, 9009, 0.1과 같은 수에서 '0'없이 표기하면 1, 5, 99... 처럼 처음과 전혀 다른 의미의 수가 된다. '빈 상태'를 나타내주는 0의 역할이 생ㅇ기면서 지금과 같은 수 체계가 확립될 수 있었다. '비었음'의 상태를 0이라고 나타내고 숫자로 인정한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없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없다'는 특정한 상태가 명백히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0은 '없는(無)' 상태이면서 동시에 '없는 상태'가 존재하는 모순을 갖고 있다. '없음'을 뜻하는 0에 대한 생각이 음과 양의 이원론과 맞닿으면서 0과 1 두 기호만을 사용한 이진법이 탄생하는 배경이 된다. 이진법은 삶의 양상 자체를 변화시켰다. 우리는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계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0은 하나의 기준이다. 모든 수 중 유일하게 양수도 음수도 아닌 수로써, 길이를 재거나 액수를 계산할 때, 온도 체크할 때 등 실생활에서 기준을 세울 때 0을 필수로 사용한다. 0은 빈 상태이며, 없음을 나타내기도, 시작을 나타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죽음은 과연 삶의 끝일까? 죽은자들만 모여있다는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의견도 있고, 다시 생명을 얻어 세상에 태어난다는 의견도 있다. 확실한 건, 죽음이라는 기준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0이라는 숫자가 기준이 되어주는 것처럼, 죽음도 인간에게 기준이 된다. 죽음을 0, 삶을 1이라고 할 때,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고(1) 또 반드시 죽는다(0). 모두가 죽음이라는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0이라는 숫자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보이는게 없다. 하지만 0을 통해서 볼 때 우린 온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죽음 역시 들여다봐도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우린 죽음을 인지하고 죽음을 렌즈로 삼아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사실 죽음 자체보다는,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 문제다. 오늘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해 꾸준히 죽음이라는 렌즈를 닦아 보는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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