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Happy)'의 역설;행복의 정의,쇼펜하워,행복과 죽음,건강과 돈,마음의 동요,괴로움,수피즘철학 등.

2023. 3. 13. 19:05잡다한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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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행복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행복을 충족하기 위해 풍요로워지기를 바란다. 무엇이든 가득 채워지면 행복할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삶은 채워나가기 위한 끝없는 여정인 것일까? 

 

쇼펜하워의 '사랑은 없다'라는 책을 참고해보면, 키워드는 '행복'과 '죽음'이다. 인간은 처음과 끝은 누구나 공평하다. 태어나고 죽고, 그 사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위해 고뇌한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행복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쇼펜하워는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가능한 괴롭지 않게 간신히 견디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인생은 채워짐으로 인해 누리는 쾌락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을 어떻게 잘 견디는가를 수련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깊은 위로와 공감을 받았다. 행복은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그 의미는 금수저와 같은 태생적 운명에 의해 판가름되는 것처럼 보이나 괴로움을 잘 견뎌낸 사람의 몫이며, 기쁨을 얻으려고 연연하지 말고 괴로움이 없도록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으로 채워진다는...

 

나는 기본적으로 행복은 '건강'과 '돈'이 충족되면 행복의 그릇은 거질수 있다고 믿는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소망, 자녀에게 베풀어줄 다양한 수단, 가족의 우환으로 인해 절망해 보았던 사람은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잘 와닿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겪은 환경 안에서 생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타인의 생각을 괄시할 생각도 없고, 현재도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짐작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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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고난' 뒤에 오는 행복은 무엇일까. 살아있다는 것, 일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런 행복은 큰 불행을 겪고 난 뒤에 오는 깨달음이다. 불행이 닥치면 근심따위는 거들떠볼 경황이 없다. 아이가 아플 때, 그 상황에서 배우자나 양가 집안에 서운했던 일들이 먼지 한 조각처럼 느껴진다. 손등에 생긴 생채기조차 그저 그런 것일 뿐, 문제로 보였던 문제들이 더이상 문제가 아니였던 것이다. 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행복의 범위는 일상보다 더 넓어지면 근심은 반복된다. 다시 이 괴로움을 견디면 또 행복이 온다. 이런 반복 속에서 우리의 삶의 여정은 괴롭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의지와 마음의 동요를 적게 해야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친구가 많을수록,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불행을 자초할 기회와 환경이 커진다. 쇼펜하워의 행복에 대한 정의에 공감하지만, 반대로 수피즘 철학은 이보다 더 간결하고 관점이 완전 다르다. 

 

수피즘은 이슬람 신비주의적 실천활동을 일컫는다. 이슬람 성법(샤리아)의 고전적인 형태가 확립되고 국가 권력이 성법의 준수를 강제하면서 신앙의 형식주의와 위선이 나타났다. 수피즘은 그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으며, 자아 의식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신과 자아의 이원적 대립을 초월하여 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 금욕적인 수행과 명상 등을 통해 신과 합일하는 실천을 강조했다. 이런 수피즘 철학에 따르면, 행복을 얻는 방법 중 으뜸은 벗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게 앉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아무 행위도 하지 않고 그저 함께 앉아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서로를 바라봐도 되고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함께 있으면 기분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 자체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다. 더이상 마음을 쓰거나 떠벌릴 필요도 없다. 그저 말없이 함께 있음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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