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rebellion, 反亂);1212사태,518민주화운동,재세례파,이스터섬,모아이족,시아파,미래파,마르세유 성,신군부,하나회 등.

2023. 4. 28. 00:05잡다한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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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5년, 루터 파나 칼뱅 파보다 훨씬 더 과격한 이단적인 프로테스탄트들이었던 재세례파가 반란을 시도하였다. 이들은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인들만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영주도 사제도 없고 모두가 직접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에 라인 강 유역의 농민들도 동조하였다. 그러자 카톨릭 교회와 독일귀족이 연합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프랑켄하우젠 전투에서 재세레파 교도들을 학살하였다. 지도자 토마스 뮌처는 혹독한 고문을 받고 참수당하였다. 그러나 재세례파 교도들은 생존자들을 모아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야음을 틈타 대원들을 침투시키는 전략을 써서 뮌스터라는 도시를 점령하였다. 그러자, 뮌스터 주교의 군대가 즉시 성을 포위하고, 농성은 1년동안 계속 되었다. 그런데, 이때 재세례파의 리더로 있던 얀 베우켈스가 그동안 권력의 맛에 심취해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취하고 공포 정치를 실시하는 등 마치 전제 군주처럼 행동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학정에 지친 세 부하의 배신으로 뮌스터의 요충을 주교의 군대에 빼앗기고 만다. 뮌스터의 학살 때에도 살아남은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암만 파'를 태동시켰다. 

 

17세기, 이스터 섬에서 주민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작은 귀' 들이 '큰 귀' 들에게 맞서서 일으킨 반란이었다. 큰 귀들은 귀족이였고, 작은 귀들은 그 유명한 '모아이(Moai) 석상'을 세우는 일에 종사했던 평민들이었다. 작은 귀들은 큰 귀들을 죽인 뒤에 조각상 세우는 일을 중단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몰락하였다. 이 반란은 영화 <라파 누이>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스터 섬, 모아이 석상

 

5세기, 시아 파(카르마트 파)신자들이 이슬람 도그마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알라는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직접 소통할 수 있으므로 사제나 사원, 기도 장소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들은 메카로 가는 순례자들을 약탈하였고, 심지어 메카의 '신성한 흑석'까지 훔쳤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모두의 분노를 샀고, 적들은 하나로 결속하여 그들을 학살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하여, 세계 곳곳에서 갖가지 예술*문화운동이 일어났다. 스위스에서는 다다이스트들이, 독일에서는 표현주의자들이, 프랑스에서는 초현실주의자들이, 이탈리아와 러시아에서는 미래파가 나타났다. 미래파는 현대의 테크놀로지에 대한 예찬을 공통점으로 삼았던 일군의 화가, 시인, 작가, 철학자였다. 어떤 미래파 연극인은 로봇이 인간을 구원하는 내용의 연극을 상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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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 즈음, 이탈리아 미래파는 이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정당에 대거 가입한 상태였다. 그들의 눈에는 전쟁을 위해 탱크와 철제 기계를 만들게 하던 무솔리니가 현대적인 사상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였다. 러시아에서도 그와 똑같은 이유로 미래파 예술가들이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두 나라의 미래파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에 회유된 채 선전 선동에 이용되었다. 그러다가 더이상 쓸모가 없게 되자, 무솔리니와 스탈린에 의해 숙청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1679년, 마르세유 주민들의 반란 이후, 당시 프랑스 최고 요새전문가인 보방이 도랑을 파면서 마르세유의 나머지 지역과 분리되었다. 항구의 입구를 끼고 건너편으로는 Fort Saint-nicolas라는 요새가 지키고 있다. 이 요새들의 건설에 대해 루이14세는 "우리는 마르세유 주민들이 멋진 요새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항구 입구에 우리 요새를 갖길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두 개의 새로운 요새는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지역 봉기에 대응하여 건설되었다는 것인데, 즉 반란을 제압하기 위한 목적에서 지어진 요새라는 뜻이다. 그런데 생상요새는 프랑스혁명 이후, 결국 내부세력에게 점령당하고 만다. 루이14세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마르세유, 성 니콜라 요새

 

1979년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가 1212군사반란을 일으킨다. 1979년 10*26사건으로 인해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뒤,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사 전두환과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간에는 사건 수사와 군 인사문제를 놓고 갈등이 깊었다. 이에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정승화가 1026사건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임을 내세워 강제 연행하기 결정하고, 12월12일을 거사일로 정하여 군사반란을 일으킨다. 군사반란이 성공하자 신군부는 빠르게 정권을 장악하였는데, 전두환은 대장과 정보부장을 거쳐 대통령에 이르렀고, 노태우 역시 대장과 내무부장관을 거쳐 대통령을 지냈다. 그 외 신군부 인원들도 모두 요직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언론을 통제하여 민주헌정을 중지시켰는데, 이에 수많은 국민과 정치인이 저항 운동을 펼쳤고,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결국 <5*18 민주화운동>으로 까지 이어졌다.  

 

하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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