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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20. 22:03잡다한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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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제

 

진시황제는 진나라 32대 군주이며,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최초 황제이다. 그는 259년 정월(음력 1월 15일)에 조나라 수도 한단에서 영이인(훗날 장양왕)과 조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시황제의 아버지인 영이인은 서자라서 장평대전 이전에 조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있었다. 그러던 중 사업차 한단에 왔던 여불위의 주목을 끌어 후원을 받으며, 얼마 뒤 여불위 집에서 조희를 만나게 되고 그렇게 부부의 연을 맺고 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는데 이가 바로 시황제다. 당시 진나라 왕인 소양왕이 붕어하였다. 효문왕이 그 뒤를 이어 즉위하였지만 몇 일 지나지 않아 붕어하고 이어 영자초가 즉위했으니 그가 바로 장양왕이었다. 그러나 장양왕도 3년만에 붕어하는 바람에 정이 13세에 진나라 왕이 되었다.

 

기원전 3세기경 한, 위, 조, 제, 진, 연, 초나라 일곱나라가 할거하여 끊일 새 없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에따라 제철 기술이 발달하고, 농업 공동체의 해체가 일어났으며, 사람들은 철기를 이용하기에 효과적인 더 큰 단위로 재조직되었다. 도시인구의 증가는 유한 지식 계급의 번성으로 이어져 이른바 제자 백가 가운데 법가의 출현은 그때까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던 새로운 제도인 절대 군주제를 낳게 했다. 법가 사상가들은 완벽한 절대 왕정의 국가를 건설하고 싶어 했는데, 그들은 나중에 시황제가 될 진나라 왕 정(政)에게 모든 권력을 시험하게 했다. 

 

아방궁

 

황제의 자리에 오른 시황제는 본격적으로 제국 통치 사업에 몰두하면서, 우선적으로 군현제를 실시하였는데 이로써 중앙집권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왕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백성들을 분할하고 상호 감시 체계를 만들었으며, 밀고 행위는 의무가 되었다. 게다가 진시황제는 법가의 가르침을 지나칠 정도로 잘 받아들여, 자기 백성들에 대한 항시적인 사찰과 역사찰을 강요했다. 나중에는 자기 신하들도 믿을 수 없어서 순진한 소년들로 이루어진 경찰을 만들어 관리들을 감시하고 재앙의 두 원천인 반동 분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을 고발하게 했다. 관리들은 앞서 가도 뒤쳐져도 안되었고, 오로지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만 일하게 되었다. 또한 배운자들이야말로 왕권에 도전한다 하여 서적을 분지르고 유학자들을 묻었다. 이게 바로 '분서갱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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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진시황은 만백성이 들썩일 정도로 대규모 토목 공사를 수차례 벌이기도 하였는데, 아방궁과 진시황릉을 건설하여 황제의 권위를 강화하는 한편 운하를 파서 수로를 통한 교역과 물품의 운송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만리장성건조를 시작하였다. 그 공사장은 처음엔 지식인들의 노역장에 불과했지만, 곧 백성들을 통제하는 좋은 빌미가 되었다. 장성을 건설하면서 수백만의 백성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 외에도 병마용갱 등 여러 기록이 있다. 또한 표준을 잡기 위하여 화폐, 도량형, 문자 등 모든 것을 진나라의 단위로 통일하였다. 

 

만리장성

 

그러나 그 모든 것으로도 시황제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세계의 주인이 된 것으로도 모자라 불사영생을 얻기 위하여, 양기가 쇠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액의 사출을 억제했고(사정의 순간 가는 실로 된 올가미로 정액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음으로써 기력이 빠지지 않게 하는 것), 모든 음식에 사화수은을 넣게 했다. 당시엔 산화수은이 불로장생의 명약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결국 산화수은에 중독되어 죽었을 것이다. 

 

중국 시안; 병마용

 

시황제는 장남 부소와 총애하던 차남 호해 중 누구를 후계자로 정할지 고민하다 사망했고, 이는 환관 조고가 호해를 향락에 빠뜨리고 나라를 쥐락펴락하며 백성들의 원성을 사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진승오광의 난이 일어나면서 진나라는 붕괴한다. 널리 알려진 고전 <초한지>는 이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어쨋든 그가 살아있는 동안 구축해 놓은 공포정치가 어찌나 막강했던지, 그의 신하들은 그가 죽어서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할 때까지 그를 경배하였고 수라도 올렸다.

 

진시황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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