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3년)조선 최초의 쿠데타 '계유정난' 발생;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다! 육진개척 김종서VS수양대군, 한명회,신숙주,사육신 생육신, 살생부.

2024. 1. 7. 22:02그날의 이야기

반응형

 

종의 장남이자 조선왕실 최고의 천재로 일컬어지는 준비된 왕 문종. 세종의 기대와 희망을 한몸에 받으며 떳떳하게 왕위에 오르지만 아쉽게도 2년만에 별세한다. 어떻게 왕위 2년만에 갔을까 ... 야심많은 동생 수양대군의 음모였을까? 어쨋든 문종이 별세하고 곧 바로 어린 아들 단종이 왕위에 오른다. 겨우 12세가 왕이 되었으니, 아직 세상물정도 모르는 아이가 무엇을 알까... 이러니 세종대왕의 차남이자 문종의 동생인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우습게 여기고, 언제든지 왕위에 오를 기회만 엿보고 있었을 것이다. 

세종대왕의 자식들로는 장남 문종, 차남 수양대군, 삼남 안평대군, 막내 금성대군이 있었다. 문종이 사망하고 그 아들 단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차남 수양대군과 삼남 안평대군은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언제든지 왕위를 찬탈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노산군일기에는 어린 단종의 무능으로 조정에 혼란이 가중되어 부득이 난을 일으켰다고 전하고 있다. 수양대군은 삼남 안평대군이 왕위를 넘보고 있다며 그의 음모를 막기위해 군사를 일으켰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정말 이게 그의 주장이라면, 그는 그의 할아버지 태종과 참 많이 닮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피의 군주 수양대군(세조)

어느날 수양대군에게 한명회와 신숙주라는 걸출한 인물들이 찾아온다. 영화<관상>을 보면 알겠지만, 수양대군측의 한명회는 뛰어난 책사다. 문종은 눈을 감기 전 어린 단종을 보좌해달라며 김종서*황보인 등에게 부탁을 하였는데, 수양대군파는 왕을 등에 업은 저들의 권세가 나날이 강해지니, 왕권강화를 위하여 그들을 제거했다는 설도 있다. 책사 한명회는 우선적으로 저들의 날개를 꺾어버리는 것이 가장 과제였을 것이다. 특히 6진개척 김종서는 정말 만만치 않은 인물~

반응형

숨죽이며 오랜 연극 끝에 한명회의 책략에 힘입어 수양대군은 드디어 쿠데타를 결행한다. 어린 왕 단종이 누나 경혜공주의 사저에서 묵는 날 궁의 경비상태가 평소보다 다소 느슨해져 있는 틈을 타 무관 양정과 홍달손을 통해 이미 준비되어 있는 병력을 이끌고 경복궁으로 쳐들어간다. 이때 수양대군은 직접 관복차림으로 김종서의 집으로 향한다. 김종서는 이런 일에 대비하질 못한 상태였고, 어쨋든 수양대군은 왕자의 신분이니 공손히 대접하려 하였다. 수양대군은 김종서에게 편지 한 통을 전한다. 달밤이라 김종서가 그것을 달빛에 비춰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한 눈 판 사이 수양대군의 수하가 철퇴로 김종서의 머리를 내리쳤고, 양정이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와 그 주변인들을 모두 칼로 베어버린다. 드뎌 정변의 시작이다!

김종서

김종서를 무너뜨린 수양대군은 곧 바로 단종이 머물고 있는 경혜공주 사택을 비롯하여 주요 군시설 및 요충지를 포위하고 장악한다. 그러고 나서 경복궁으로 가서 단종의 접견을 요청하며, 단종의 동부승지 최항에게 조정대신들의 리스트를 내 놓으라고 협박하여 명부를 넘겨받는다. 이것이 곧 '살생부'가 된다. 단종을 접견한 수양대군은 김종서와 안평대군이 짜로 역모를 꾀하였고 거짓보고 하고, 한명회, 홍윤성, 홍달손 등을 시켜 광화문과 대권을 장악하도록 한다. 

살생부를 들고 있는 수양대군은 단종의 명을 빙자하여 반대파 조정대신들을 모두 입궐하게 하였고, 이날 영의정 황보인, 좌찬성 이양, 병조판서 조극관 등이 모두 철퇴에 맞아 이슬로 사라진다. 이로써 세종과 문종의 유지를 이어받아 정사를 주도하던 세력은 모조리 살해되면서 세종대왕이 꿈꾸던 조선은 한반도에서 사라지게 된다. 쿠데타가 마무리되고 다음날 아침 김종서, 김승규, 호아보인, 이양 등 신료들을 모두 역모죄라는 누명을 씌워 저자거리에 효시되었고, 안평대군도 역모로 몰아 강화도로 유배시켰다가 사약을 내렸으며, 반대파 중신들의 처첩 및 자녀들을 노비로 전락시키는 등 비정한 행보가 계속된다. 

하지만, 수양대군은 스스로 왕위(세조)에 오른 이후 비록 정변을 일으키고 그 과정이 비정하다 하지만, 왕으로써의 업적은 상당히 잘 하였다는 평이 많다. 세종이 재정한 '수령 고소 금지법'을 철폐하였고, 뇌물 등에 철저한 처벌 모습을 보여주며, 외교적으로도 명과 여진 그리고 왜(일본)에 대해 강경한 외교정책을 펼쳤다.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폐위시키고 영의정자리까지 오른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된 인물, 한명회! 그는 왕권강화를 위해 사육신과 생육신 등 많은 신하들을 죽인 최악의 간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계육정난 작전을 세운 머리였고, 살생부도 한명회가 직접 작성하였다. 성삼문을 필두로 집현전학자들이 <세조암살 단종복위>운동을 펼치려 했을 때 미리 알고 대처하기도 했다. 사육신(성삼문 하위지 유성원 박팽년 이개 김문기)을 포함 무려 800여명이 처형되었고, 이를 계기로 승정원, 좌승지, 도승지, 이조판서로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 조선역사상 최고의 권세를 누리던 그는 세조13년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키며 한명회*신숙주를 모함했고, 이로인해 의금부에 갇혀 세조와 자연스레 멀어진다. 하지만 셋째딸을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구에게 시집보냈는데 훗날 그가 예종이 되었으며, 넷째딸은 성종의 비로 공혜왕후가 되어, 예종~성종까지 무려 2대에 걸쳐 장인노릇을 했고 막강한 외척세력이 된다. 한명회의 호는 '압구'이며 압구정동의 명칭이 한명회의 호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다. 압구의 의미는 '세상일 다 버리고 강가에서 갈매기와 노닌다'라는 뜻인데, 당시 최고 권력자들이 모여 유흥을 즐기고, 정치적 판을 짰던 중심지이기도 했다. 죽는날까지 최고 권세를 누렸지만, 훗날 폭군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를 당하게 된다. 

 

단종유배지_강원도 영원 청령포
단종의 곤룡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