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13. 19:05ㆍ그날의 이야기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종대왕의 차남 세조(수양대군). 그는 쿠데타로 왕에 오른 만큼 무시못할 권력을 쥐고 통치체제를 다시 6조 직계제(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6조에서 왕으로 직계)로 고치고, 단종 복위운동을 빌미로 집현전을 없앴으며, 국방강화는 물론 '이시애의 난(1467년)'이 일어나자 이를 토벌하였다. 경제적으로는 관리에게 줄 토지가 부족해지자 과전법(퇴임한 관리에게 주는 토지)을 폐지하고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한 직전법을 실시하였다.
직전법이란 현직관리에게만 토지를 지급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현재 공무원들에게 연봉을 토지로 지급하였던 것이다. 그 이전 과전법은 신진사대부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해 현직관리자는 물론 이미 퇴직한 전직 관리자에게도 토지를 지급하였다. 이러다보니 이 조그마한 대한민국 땅덩어리에서 더이상 여유롭게 지급해줄 토지가 부족했고, '휼양전''수조권'이 세습의 형태로 변질되었다. 그래서 세조는 현직 관리에게만 토지를 지급하는 직전법을 실시하게 되었다. 어쨋든 직전법을 실시한 걸 보면, 세조때에 이르러 왕권이 강화되었고 조정도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직전법시행으로 인해 현직 관리들은 나중에 퇴직 후를 대비하여 현직에 있을 때 대토지를 차지하여 농장이 확대되었다. 이런 농장의 확대로 인해 국가의 농민 지배가 약화되었다.
하지만 직전법이 단순 토지문제때문에 실시한 것일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직전법은 세습제를 개혁하고 귀족 계급의 권한을 제한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이 법은 군사, 정치, 경제 분야에서 중앙집권화를 강화하고, 지방 귀족들의 권한을 억제하는데 사용되었다. 특히 중앙정부가 지방 지배계급인 동리 (同里) 와 서리 (西里) 를 통제하고 지방행정을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직전법의 시행은 중앙집권화와 중앙집행력 강화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시대 정치적 변화와 개혁을 나타내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기존의 과전법 때에는 주인이 직접 전세를 거둬들였다. 그런데 직전법 때에도 이런 관행이 지속되어 토지의 농민들은 사전 주인에게 전세 외에도 건초를 납입할 의무까지 지고 있었기에 농민들의 부담이 무척 무거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성종대에는 각 직전의 수조권자가 직접 답험(농작물의 손실정도를 직접 조사하여 세액을 결정짓는 것)하는 관행을 고쳐 국가에서 일괄로 처리하고 세금을 거둔 후 이를 사전 주인에게 나누어주는 '[관수관급제] 방식을 도입하였다. 관수관급제의 도입은 수조권자와 경작자들이 직접 마주할 일이 없었고, 사전 주인이 그 권리를 직접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을 없애는 조치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