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23. 16:19ㆍ그날의 이야기
1592년(선조6년) 왜놈들이 조선에 쳐들어 와 '임진왜란'이 발생한다. 당시 동아시아 지역은 오랜 세월 다양한 민족들이 공존하면서 복잡한 관계를 형성해 왔는데, 특히 조선과 일본은 이웃한 국가로써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조선은 중국의 영향을 받으며 중앙집권적인 정치 체제를 갖추고 있었고, 일본은 무리한 확장 정책을 추진하며 군사적인 강화를 이루어 나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과 일본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고, 왜구라는 일본의 정책이 조선에 큰 위협을 안겨주었다.
선조임금은 중앙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하고, 경제와 문화 발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왜구의 빈번한 침략으로 안정적인 통치를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일본은 왜구라는 정책을 통해 조선을 흔들어놓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일본은 조선의 내부분열을 부추겼고, 왕실과 관료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등의 전략을 추진했다. 이러한 왜구의 간섭으로 인해 조선은 정치적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미 일본은 조선 침략을 위한 대대적인 준비와 전략에 시동을 걸고 있었는데, 조선 내부에서의 정치적인 분열과 왕실 간의 갈등이 왜란 발발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조선의 군사력이 약해져서 왜구의 침략에 저항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여러 원인들이 겹쳐서 임진왜란 발발을 촉발시켰으며, 이는 동아시아 전역에 민족관계와 역사적인 배경에 근본적으로 기인한 문제였다.
일본 전국을 통일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륙을 차지하고자 야심을 품고 종종 "우리는 머지않아 한양에서 매년 여름을 보내고, 베이징에서 겨울을 보낼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대륙진출이라는 이름의 침략야욕! 임진란 때 조선을 침략한 16만명 정도로, 전체 병력은 9개 부대와 8000명이 조금 넘은 수군으로 편성되었다. 1개 부대는 대략 1~2만명정도였으며, 이들 외에 침략 전초기지인 히젠 나고야 성에는 예비부대로서 10만명 정도가 대기하고 있었다. 곧 조선침공을 위해 26만명을 준비해두고 그 중 16만명을 파병한 것이다. 히젠 나고야는 현재 일본 규슈의 제일 윗쪽 끝단인 사가시 지역으로 조선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왜군은 수십 년간 전투로 단련되었고, 서양식 신무기인 조총을 사용사였기에 조선군은 전쟁 초기 육지에서 왜군의 진격을 막기 어려웠다. 먼저 부산과 동래가 함락되었꼬, 충주에서는 신립의 군대마저 패배하여 수도 한양까지 단기간에 점령당하였다. 이후 왜군은 함경도와 평양 일대까지 진격하였고, 선조는 의주까지 피란하였다. 전투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함락된 해남'이다. 일본은 해남을 점령하여 조선 정부를 압박하고자 하였으나 조선군의 강력한 저항이 있었고 또한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과 유성룡의 지원으로 조선은 강력한 항전을 펼칠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해군을 이끌며 일본의 침략을 막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하였으며, 그의 거북선은 조선의 장긍심과 함께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수군은 거북선이라는 특수한 선박을 이용해 일본의 해군과 전투를 벌였고, 이에 비해 일본수군은 화력이 강한 선박과 다양한 무기들을 사용하여 조선수군을 공격했다. 화력의 차이를 극복하고 일본의 공세를 막기 위해 적극적인 방어 전략을 채택한 것이 전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반도에서만 일어난 전투이기에 일본 본토는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아 쌀생산량 등이 크게 가파르게 증가하였고, 반대로 조선은 모든 경작지가 전쟁으로 철저하게 파괴되어 쌀 생산량이 300만석에서 100만석으로 감소하였고, 식량부족으로 굶어죽은 아사자만 수십만명으로 추정되며, 이런 파괴된 환경을 복구하는데만 무려 100년이 걸렸다고 한다. 조선의 인구도 3000만명에서 약2000만명으로 줄었고, 문화발전도 쇠퇴하였으며, 국민생활은 당연히 완전 피폐해졌다. 임진란 이후 조선도 경각심을 느끼고 국방력 강화는 물론 조총생산이 시작되었고, 의료부문에서도 동의보감이 편찬되기도 하였으나 종이가 부족하여 민간요법으로써 퍼지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포상'을 둘러싸고 당파싸움이 여전하였다. 참... 그리고 일본과는 국교가 단절되었으며, 명나라와는 사이가 더욱 돈독해진다.
임진란이 끝나고 한국과 일본의 국력이 역전당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훗날 세계 최강의 육상대군 러시아와 일본제국이 한반도를 두고 러일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러시아 발틱함대마저 침몰시킨 일제는 대한민국을 '식민지'로 선포해버린다. 한편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막고 승리함으로써 독자적인 정체성과 자긍심을 갖추게 되었고, 이순신장군 등 여러 영웅들도 동아시아 역사에서 긍정적인 모범이 되었다. 임진왜란은 민족간의 협력과 힘을 강조하는 교훈을 남겼으며,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외부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협력과 군사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