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4년)영창대군 사건으로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며 조선 최초 백과사전 '지봉유설'을 편찬하다. 실학사상, 군자의 나라, 무궁화 등.

2024. 2. 28. 23:04그날의 이야기

반응형
지봉유설

 
이수광(1563~1628년)은 조선 중기 학자다. 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역임하셨고, 1585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으며, 1590년 성절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방어사 조경의 종사관으로 종군했으며, 함경도에서도 이반한 민심을 돌이키는데 공을 세웠다. 1597년엔 성균관대사성이 되었으며 진위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고 그곳에서 안남(베트남) 사신과 교류했다. 1611년 왕세자의 관복을 청하는 사절단의 일원으로 또 명나라에 갔는데 그곳에서 섬라(태국) 사신을 만나 그들과 교류하고 그곳의 풍속을 기록했다. 1613년에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사직하였고, 다시 1616년에 순천부사가 되어 임기를 마치고 수원으로 이주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즉위하자 도승지로 관직에 복귀하였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왕을 공주로 호종하였으며, 1625년 대사헌으로써 왕의 구언에 응하여 12조목에 걸친 <조진무실차자  條陳懋實箚子>를 올려 당시 가장 뛰어난 소장(疏章) 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강화로 피신하였으며, 이듬해 이조판서에 임명되었고 사망하였다. 

이수광

이수광은 임진왜란의 참화가 군대를 미리 양성하기 보다는 민생이 도탄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으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 허(虛)가 아닌 실(實)을 강조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걸친 시정의 폐해를 지적하였다. 덕치주의 구현을 강력히 요구하면서도 민생에 대해 진취적인 입장을 취하는 치세관을 보인다. 

지봉유설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랄 수 있으며, 천문*지리*병정*관직*재이*제국*군도*경서*문자*인물*성행*신형*인사*잡사*기예*외도*식물*훼목*금충 등 모두 25부문 3,435항목을 고서에서 뽑아 풀이하였다. 이 외에도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참고하여 천주교 교리와 교황을 소개했으며, 세계 지형과 풍물*문화 등을 포함했다. <외국>편에서는 중국과 일본은 물론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는 물론 프랑스, 영국까지 소개한다. 영국에 대해서는 당시 함대가 최강이며 철로 만든 배라고 했으며, 모직물과 대포 등도 소개했다. 

반응형

지봉유설은 이처럼 분야별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수광의 실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당시 중국을 통해 들여온 천주교와 서구 문물을 소개한 점 등 우리 역사에서 편찬된 유서로는 선구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수광은 사회적 격변기에도 꾸준히 탐색하고 개척해 낸 학자정신이 강했으며, 그의 저서들은 훗날 실학사상에도 영향을 준다. '지봉유설'의 유설(類說)이라는 의미는 여러 종류의 이야기라는 뜻이고, 천문*지리*인문*사회 등 세상의 중요한 것들을 항목별로 정리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주는 백과사전이다. 서양에서 18세기에 디드로, 볼테르, 몽테스키외 등 백과사전이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지봉유설은 그보다 약 150년쯤 앞선다고 할 수 있다. 이수광은 높은 학문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지봉유설을 편찬할 수 있었으며, 지봉유설의 '외국'편에서 소개한 나라들의 명칭을 보면,

베트남: 안남국(安南國)/ 라오스: 노과국(老撾國)/ 류큐: 유구국(琉球國)/ 스리비자야: 삼불제(三佛齊) /참파: 점성국(占城國) / 태국: 섬라국(暹羅國) - 섬(暹)은 '시암'을 라(羅)는 '羅斛(나괵;롭부리Lopburi)'을 의미하는데 이 둘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 일본 / 첸라: 진랍국(眞臘國) / 자바 섬: 조와(爪哇) / 말라카: 만라카(滿剌加) / 방글라데시: 방갈라(榜葛剌) / 사마르칸트: 살마이한(撒馬爾罕) / 호르무즈: 홀로모사(忽魯謨斯) / 포르투갈: 불랑기국(佛浪機國) / 네덜란드: 남번국(南番國) / 영국: 영결리국(永結利國) 등등.

이수광 생가

지봉유설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군자의 나라의 지방은 천리이며, 목금화(무궁화)가 많다. 당나라 현종이 신라를 군자의 나라라고 부른다. 또 고려 때의 표사에 우리나라를 일컬어 근화향이라고 한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내용대로 이해하면, 무궁화가 상고시대때부터 우리나라에 가장 흔한 '나라꽃'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즘 우리나라 꽃 '무궁화'를 참 보기 힘들다. 각 지자체에서 이제부터라도 신경써서 무궁화를 좀 심어보면 어떨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