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병인박해(병인사옥),병인양요,제너럴셔먼호 사건 발생;척화비,조선왕실의궤,파리국립도서관,박병선씨,박규수와 조선백성들.

2024. 6. 23. 18:03그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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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비

 

1866년은 조선역사에서 병인박해, 병인양요, 제너럴셔먼호 사건 등 여러 사건들이 동시에 발생하여 국내외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병인박해는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정책으로 천주교신자들과 선교사들을 대규모로 박해하였다. 천주교 교리와 조선의 유교적 가치관이 충돌하였으며, 이에 유교적 사상에 반대가 되는 천주교를 이단으로 간주하고 조선 전역에서 금지된 종교가 되었다. 이런 금지된 사상을 퍼트려 조선의 유교질서를 어지럽히니 조선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죄를 물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에따라 조선 전역에서 카톨릭 신자 8천여명과 9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을 대거 체포하고 처형하였다. 또한 당시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프랑스를 이용해 견제하려고 하였는데, 프랑스 측에서 이를 거절하자 이에 감정이 쌓여 더욱 심하게 박해한 원인도 있다. 어쨋든 당시 리델 신부가 중국 천진에 있던 프랑스함대 극동사령관 로즈 제독에게 이 병인박해의 내용을 알렸고,  결국 이 사건은 프랑스의 간섭을 초래하여 병인양요의 원인이 된다.  

병인양요는 곧 병인박해를 명분으로 프랑스가 일으킨 전쟁이다. 병인박해로 프랑스 선교사 9명이 처형당하자 이를 구실로 로즈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강화도에 침공하였다. 이때 프랑스군은 강화도의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보관중이던 '조선왕실의 궤 297권' 등을 약탈해갔다. 이때 프랑스군은 '조선의 야만적 행위에 제동을 걸어 문명화로 이끌고 교인들이 천주에 기도할 수 있게 해주며, 국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삶을 보호한다.'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병인양요는 동아시아 지역에 식민지를 개척하여 세력확산 거점으로 삼으려던 프랑스 제국과 아편전쟁 후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중국의 현실을 거울삼아 완간하게 개방을 거부했던 조선과의 국운을 건 한판 승부였닫. 프랑스군에 대항하여 조선군은 문수산성과 정족산성에서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특히 정족산성에서 조선군이 승리하여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안타깝게도 결국 이 사건은 조선이 서양세력에 대해 보다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로, 1979년 프랑스로 귀화한 파리국립도서관 사서 박병선씨에 의해 창고에 방치된 의궤를 발견해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박병선씨는 이로 인해 '반역자, 스파이'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녀는 1972년 '직지심체요절'이 세계최고 활자본임을 밝혀 세상을 놀라게 하였고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킨 1등공신이였다. 2011년 약탈되었던 왕실의궤 등 주요문서들이 영구임대형식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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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셔먼호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 평양에서 통상을 요구하였다. 당시 조선은 흥선대원군에 의해 쇄국정책으로 외교통상을 일절 거절하고 있었는데, 미국상선측은 통상을 거절당하자 불쾌해서 행패를 부린다. 이에 평양감사 박규수의 지시로 평양군민들이 배를 불태워버리고 배에 탑승한 인원들도 모두 전원사망한다. 이 사건이 원인이 되어 5년 후 '신미양요'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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