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한국 광복군 창설, 한국독립당 설립;중국 총통 장제스와 백범 김구의 인연, 한국광복군 선언문, 임시정부 지도부 '한국독립당'.

2024. 9. 26. 22:48그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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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항일 무장투쟁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독립군을 조직할 필요성을 느낀다. 당시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인해 중국과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상황이였는데, 이에 중국의 장제스와 김구는 공동의 적 일본제국에 맞서기 위하여 인연이 맺어졌고, 5월에 장제스 총통에게 한국광복군의 활동을 승인해줄 것을 교섭*승인받아 광복군을 창설하게 된다. 처음엔 광복군의 지휘권이 중국 국민당 정부에게 있었으나 1944년 8월 임시정부로 통수권이 넘겨졌다. 

한국 광복군은 중국 국민당 정부와 협력하여 군사작전을 수행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과 미국 OSS(CIA전신)와 연합하여 대일 첩보 작전에 참여하였다. 또한 1941년 태평양 전쟁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을 주축으로 대일 선전포고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1945년엔 OSS의 지원을 받아 최초의 한미연합작전인 일명 "독수리 작전"이라고 불린 국내 진공작전도 준비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일본의 항복으로 실현되지 못하였고, 해방 후 한국광복군은 각자 개인자격으로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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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광복군 선언문]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원년(서기1919년) 정부가 공포한 군사조직법에 의거하여 중화민국 총통 장개석 원수의 특별 허락으로 중화민국 영토내에서 광복군은 중화민국 국민과 합작하여 우리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기위해 연합국의 일원으로 항전을 계속한다.
과거 30년간 일본이 우리 조국을 병합 통치하는 동안 우리 민족의 확고한 독립정신은 불명예스러운 노예 생활을 벗어나기 위하여 무자비한 압박자에 대한 영웅적 항전을 계속해왔다. 영광스러운 중화민족의 항전이 4개년에 도달한 이 때, 우리는 큰 희망을 가지고 우리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우리의 전투력을 강화할 때가 왔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장개석 총통의 한국 민족에 대한 원대한 정책을 채택함을 기뻐하며 감사의 찬사를 보낸다. 우리 국가의 해방운동과 특히 우리들의 압박자 왜적에 대한 무장 항전의 준비는 그의 도의적 지원으로 크게 고무되었다. 우리들은 한*중 연합전선에서 우리 스스로의 계속 부단한 투쟁을 감행하여 자유*평등을 쟁취할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대한민국 서기 1940년9월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한국 광복구 창설 위원회 위원장 김 구

같은 시기 1940년 5월, 한국광복군과 함께 한국의 독립운동을 통합하고 독립운동 세력 간의 분열을 극복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항일 투쟁을 이끌어가기 위해 '한국독립당'이 설립된다. 역시 김구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의 주요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임시정부의 정치적 지도부로 활동하였다. 한국 독립당은 광복 후에도 중요한 정치적 조직으로 활동하였으며, 광복 후 한국의 정치적 미래에 대해 논의하는 중요한 기구로서 기능하였다. 

민족의 영원한 스승, 백범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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