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카이로 선언;루즈벨트 대통령*윈스턴 처칠*장제의 만남. 이집트 카이로에서 한국의 독립을 얘기하다 ~ "이승만이 엄청 수고했네 ~"

2024. 10. 14. 14:21그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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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11월, 미국*영국*중국의 최정상이 이집트 카이로에 모여 2차 세계대전 후 동아시아의 전후 질서를 결정하고, 특히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해방될 국가들에 대한 회담을 가졌다. 2차 세계대전 시기... 당시 이승만은 "Japan Inside Out"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미국 최초 한국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본이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는데, 이런 이승만의 경고대로 미일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에서는 그의 선견지명이 이슈가 되었다. 이때 이승만은 미 상원의원이자 목사인 프리드릭 브라운 해미스 감리교 지도자들을 통해 한국의 독립의지를 미 정부에 전달하였다. 결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측근인 해리 홉킨스가 작성한 <카이로선언문>초안에 대한민국 독립이 포함되게 된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윈스턴처칠 그리고 중국 총통 장제스... 이들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한자리에 만나 회담을 가진다. 여러가지 내용이 있었겠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한국의 독립을 최초로 논의하였다는 점이고, "한국인들의 노예상태를 유념하여 적당한 절차에 따라 독립을 허용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때 '적당한 절차'가 의문스러웠던 이승만은 이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밝혀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훗날 그것은 '신탁통치'였음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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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선언문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이 점령한 모든 지역을 해방시키고 반환시킨다. 특히 일본이 청일전쟁 이후 빼앗은 타이완(대만)과 펑후 열도를 중국에 반환하도록 한다.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키겠다. (이것은 한국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공인한 성명이였으며, 이후 광복과 독립운동에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일본은 점령한 모든 영토에서 물러나야 하며, 일본의 전후 처리문제는 연합국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카이로선언(회담)은 연합국이 일본 제국주의 확장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보여주는 국제적 합의였으며, 이후 동아시아 질서를 재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이 내용은 1945년 7월 26일에 발표된 '포츠담 선언'에도 반영이 되었으며, 일본이 거부할 경우 전쟁이 지속될 것임을 경고했고, 결국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항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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