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광복! 드디어 해방되었다; 일제의 패망으로 광복, 조선인민공화국 수립, 군정청 설치.

2024. 10. 28. 16:09그날의 이야기

반응형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제가 패망하면서 한반도는 드디어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었다. 광복! 한반도는 약 35년간의 일본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을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독립을 위해 싸워 온 독립운동가들의 노력과 함게 연합국의 승리 덕분에 가능한 것이였다. 그런데, 일본 패망에 결정적 계기가 되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일본은 왜 질 싸움이 분명해 보였던 미국과의 무모한 전쟁을 벌였을까?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일본이 '고래' 미국을 건드릴 수 있었던 이유, 첫번째 과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 강대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경험. 그리고 훗날 강대국을 상대할 만큼의 고도성장을 이룬 발전과 항공모함 보유. 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저들의 똘아이 근성! 바로 패배를 알면서도 통제할 수 없었던 분노가 결국 전쟁을 일으키게 만들었던 것이다. 분노조절장애?

일제가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건, 바로 저들의 '군국주의' 사고방식때문이다. 일제의 감정은 곧 군부의 감정이였고, 군부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이기에...  군부통제불가로 과거 만주사변이 일어났었고, 만주사변은 일본정부가 아닌 군부가 독자적으로 일으킨 사건이였다. 아울러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일본 내각을 장악하였다. 번주-쇼군-천황으로 구성되었던 일본 계급체계에서 '쇼군'이 빠져버리고 사상적 구심점이 '천황'을 중심으로 모여 번주들이 입헌군주제를 실시한다. 독자적으로 설립된 내각과 군부였기에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버렸고, 또라이 혈기가 넘쳐서 미국까지 넘봤던 것! 결국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무시무시한 '원자폭탄'에 히로시마가 통째로 날라가버리고 항복을 선언한다. 

반응형

군부통제 불가의 궁극적인 원인 : 민주화의 실패

일본 내에서 민주주의 운동이 실패했기에 결국 군부통제하는 것도, 전쟁참여도 일본국민이 선택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지.(다이쇼 데모크라시 민주주의 운동 실패)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 사회가 민주주의 였기에, 이 부분에서 '민주주의' 틀을 만드는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롭게 깨닫게 된다. 

미친늠...ㅉㅉㅉ

광복 직후 9월 6일, 서울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주도로 조선인민공화국이 선포된다. 여운형을 중심으로 좌익과 우익세력들이 주도하여 한반도에 자주 정부를 세우려 하였다. 이들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조직하여 광복 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사회질서를 확립하고 민중의 지지를 얻고자 하였다. 조선인민공화국은 임시정부 역할을 하며, 민족의 독립과 평화를 목표로 하였다. 조선인민공화국이 인민위원회를 통해 사회 곳곳에서 실질적인 통치를 시도했지만, 미군정은 이들을 불법조직으로 간주하고 공식정부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미군정은 이들의 활동을 제한하고 직접통치를 시작하였다. 

한반도는 연합국의 신탁통치를 받게 된다.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미국과 소련이 각각 남과 북을 관리하게 되었다. 남한지역에는 '미군정청(USAMGIK)'이 설치되어 통치를 시작하였다. 미군정청은 조선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고 정치와 행정을 직접 관리하였다. 미군정청은 법령과 제도를 제정하며 남한에서의 민주주의 및 자본주의 체제를 준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렇게 미군정청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약 3년간 남한을 통치하였다. 이로써 남북의 분단상황과 각종 정치세력의 갈등이 시작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