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2. 19:48ㆍ그날의 이야기
1938년부터 지원병제도를 통해 조선인 남성들을 전쟁에 동원해 온 일본. 그러나 1944년에 들어서자 전세는 불리해지고 지원병만으로는 부족하여 강제적 징병제를 실시한다. 만20세이상 조선남성들을 대상으로 강제 징병을 실시하였으며, 이때 약 20만명이 징집되었다. 이들은 전투병으로 일본군에 편입되었으며 태평양전쟁에 참전하거나 또는 일본 본토에서 노동력으로 활용되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간부후보생이라는 제도를 실시하였는데, 일단 이등병으로 끌려가서 일부는 간부후보생 시험을 봐서 합격시키기도 하였다. 물론 자신들과 같은 일본쪽바리들은 시험 본 전원을 장교 및 하사관으로 전원 합격시켜 차별을 두었다. 그래도 조선인들 중 고학력졸출신들은 조선인이라도 갑종으로 합격하여 장교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이 과정이 무척 길어 그들중엔 견습사관생활만 하다가 전쟁이 끝나버려 소위도 못달아본 자들도 많았다.
간부후보생(갑종합격자)은 시험 합격 후 3개월 간 집체교육 그리고 1년간의 예비사관학교생활을 하다가 소속연대에서 6개월간 견습사관생활을 하고 소위를 단다.
하사관(을종합격자)은 3~4개월간 초병교육 및 시험합격 후 3개월간 집체교육 그리고 3개월간 하사관교육을 마치면 하사관으로 근무한다.
중일전쟁이 시작된 후 일제는 조선에 대한 무제한적인 물적*인적 수탈을 강요했다. 특히 그 중 전시노무대책의 일환으로 여성노동을 집중적으로 수탈하기 시작했는데, 병력동원과 징용으로 인해 인력이 부족한 2차 산업현장 등에 여자노무를 대체 동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여자정신근로령'이 공포*시행되었다. 만 12~40세의 배우자없는 여성을 정신대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정신근로령서를 발급해 부녀노동력을 동원했다. 일할 수 있는 여성이 모두 대상이였으며, 동원된 여성은 무조건 노무 제일선에 끌려갔으며, 각 종 공사장에서 단순노무부터 시작해 전선기지에서의 사무직 등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이는 표면상의 이유일 뿐이고, 군과 결탁한 매춘업자들이 이들 중 다수를 종군위안부로 투입했기에 여자정신대는 곧 종군위안부를 뜻한 것이다.
여자정신근로령은 표면상 강제노동을 합법화하기 위한 것이였고, 이에 의해 수많은 여성들이 일본의 전쟁을 위한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었던 것이다. 강제징병제도 남성들이 전쟁터로 끌려나가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해 불구자가 되었고, 여성들은 여자정신근로령이라는 표면 아래 위안부로 끌려가 인권을 유린당했다. 이러한 일들은 해방 후에도 큰 상처로 남았으며, 강제동원되었던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에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는 운동이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조선인을 전쟁자원화한 일본의 인권유린정책~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