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3. 21:42ㆍ그날의 이야기
1979년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였던 김재규의 총에 맞아 암살되었다. 이로인해 국내는 대 혼란에 빠졌고,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게 된다. 이때 군부 내에서 신군부(전두환 중심)와 비신군부(정통 군 수뇌부) 간의 갈등이 심화된다.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 소장은 '이때다!' 싶어 군 권력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12월12일 오후 4시경, 전두환은 '박정희 암살사건' 수사를 빌미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기로 결정하고, 당시 수도경비사령관리었던 노태우와 함께 계엄사령부를 방문하여 체포계획을 실행한다. 오후 6시경, 결국 전두환의 명령으로 정승화를 '내란음모' 혐의로 강제연행한다. 오후 9시경, 신군부가 서울 시내 주요 부대를 동원해 계엄사령부와 육군본부를 장악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총돌이 발생했으나 신군부가 빠르게 군을 장악한다. 여기에 수도방위사령부(수경사), 특전사, 보병사단이 동원되었다. 자정무렵(12월13일 새벽), 최규하 대통령이 사실상 신군부의 압박을 받아 전두환에게 협조하게 되고, 기존 군 수뇌부도 교체된다. 이로써 전두환이 군부 실권자가 된다.
12*12사태는 단순한 군 내부권력다툼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사건이며, 결과적으로 군부 독재의 기반이 다져졌고, 이후 민주화운동이 격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12*12사태 이후, 전두환과 신군부의 세력이 군권을 완전히 장악하였고, 기존 정통 군부(정승화 계열)는 모두 숙청되고, 육사 11기 중심의 신군부가 권력을 독점한다. 전두환은 1980년5월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단행하여 정치권까지 장악하였다. 1980년8월,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하고, 결국 전두환이 11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독재 체제가 시작되었다.
이후 사건 전개
1980년5월18일, 광주에서 민주화 시위가 시작되었고, 신군부가 무력으로 진압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희생되었으며, 전두환 정권의 잔혹성이 드러났다. 이후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는 계기가 되었다. 12*12사태로 대한민국은 또 다시 군사정권에 들어갔다(박정희->전두환). 1981년, 전두환이 제5공화국을 출범시키고, 유신체제와 유사한 독재 정치를 펼쳤지만, 민주화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군사정권에 대한 반발이 커졌다. 결국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면서 군부 독재가 종식되었다.
1995년, 김영삼 정부가 12*12사태를 '군사반란'으로 규정하였고, 관련자들을 처벌하기로 결정하였다. 1996년,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핵심 인물들이 반란죄 및 내란죄로 기소되었다. 전두환은 무기징역/노태우는 징역17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997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오늘날 1212사태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민주주의를 유린한 대표적인 쿠데타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