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3월27일 대한민국 프로야구 첫 경기. 이 날이 없었다면 KBO도 없다. 1982년의 역사적 순간! 전광판도 없던 시절, 야구는 어떻게 팬을 울렸을까.

2025. 4. 5. 17:42그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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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동대문 운동장은 봄바람보다 더 뜨거운 열기로 가득찼다. 대한민국 프로야구 첫 경기의 동대문 야구장은 오늘날의 멋진 돔구장과 첨단 장비 속에 치러지는 KBO리그와는 다르게 투박하고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동대문 야구장에는 전광판도, 대형 화면도 없었다. 관중들은 종이 응원도구를 손에 들고, 고함을 치며 경기를 지켜봤다. 첫 경기의 두 팀은 MBC청룡VS삼성 라이온스. 무려 1만4천여명의 관중들이 몰려 동대문 야구장을 가득 메웠다. 지금처럼 홈런 세리머니나 슬로모션 리플레이는 없었지만, 팬들의 박수와 환호가 그보다 더한 감동을 만들어 냈다.

당시 첫 경기는, 초반까지만 해도 삼성의 압도적 우세였다. 1회초에 2점을 획득한 후 3회까지 5:1로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MBC가 서서히 추격해 6회말 7:4까지 따라갔다. 그리고 7회말에 3점을 터뜨려 7:7동점까지 이뤄냈다. 이후 양 팀은 9회말까지 득점없이 연장전에 돌입한다. 연장 10회말 MBC의 공격이 전설로 기록된다. 2아웃에 주자는 1, 3루 상황! 이때 다음 타자는 솔로홈런을 친 백인천 지명타자. 삼성에서는 백인천을 고의사구로 거른 뒤 다음 타자인 이종도와 승부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종도가 여기에서 만루 홈런을 터뜨린다. MBC가 11:7로 역전승을 거둔다. 

1982년은 대한민국 스포츠 야구의 태동을 의미한다. 당시 6개구단(삼미 슈퍼스타즈, OB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MBC청룡, 해태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가 참가한 대장정에 돌입했다. 이전까지는 만화 '까치' 및 '독고탁' 이 나올 정도로 실업팀이나 고교야구가 주류였지만, 프로화 이후 선수들은 정식 연봉을 받고 활동하며 '프로'라는 신분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때가 곧 한국 스포츠 산업의 대전환점이기도 했다. 이제 KBO리그는 한국인의 삶에 뿌리 깊게 자리한 스포츠 문화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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