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이야기(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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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보천보 전투;김일성의 빛나는 업적? 결론은 소련 따까리...남한과 북한의 생각차이. 남한과 북한의 처참한 증거명으로만 남은 '보천보전투'.
1930년대 초,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조선 독립운동가들과 중국 공산당은 '동북항일연군'이라는 항일 무장조직을 형성하고 일제에 맞서 싸워오고 있었다. 이때 지도자가 바로 김일성이다. 당시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겪고 한반도와 만주일대에 대한 지배체제를 강화하였다. 일본은 한반도 내 민족주의와 독립운동을 강력히 탄압하였으며, 항일 세력은 만주를 기반으로 일본군과의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1937년 6월 4일, 김일성이 권총으로 신호탄을 쏘아올림으로써 동북항일연군 유격대는 함경남도 보천보 지역에서 경찰서와 여러 일본 통치기관들을 공격하고 불태웠다. 일본군은 즉각적으로 대응해 추격전을 벌였으나, 동북항일연군 유격대는 산악지형을 이용해 빠르게 치고 빠졌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의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
2024.09.10 -
(1931년)조선어학회 창립, 한인애국단 수립;우리말 보존, 한글맞춤법 통일 및 <우리말큰사전>,영화 말모이, 백범 김구, 윤봉길, 이봉창 의거. 광복군 창설의 기반.
1931년엔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한국어와 글을 사용하는 것을 단속하고 금지시키고 일본어 사용을 강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지식인들은 일제의 눈을 피해 우리 모국어를 살리고 보존하기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1년에 이윤재, 이극로, 최현배 등의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어학회'가 창립되었다. 원래 1921년에 조직된 단체 '조선어연구회'가 모태가 된다. 조선어학회는 우리 한국어의 연구와 보존, 보급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그 안에 표준어를 정립하고 맞춤법을 통일하고, 국어사전 편찬 등 주요과제를 이루어나갔다. 1933년 조선어학회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였고 이것은 현대 한국어 표준 맞춤법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조선말 큰사전]을 편찬하였는데 이것은 안타깝게도 일제의 ..
2024.09.05 -
(1926년)대한제국 순종황제 사망~'6·10만세운동', 정우회 선언, 조선 민흥회 창립;순종의 사망은 다시 독립의지를 불태우고 전국 만세시위로 이어지다. 신간회가 창립되어 좌파와 우파가 합작으로 독립전선을 구축하다.
1926년 4월 25일,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사망한다. 순종의 장례식은 민족의 일제에 대한 저항의 기회를 제공했으며, 이로 인해 6*10만세운동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6*10만세운동은 조선3대독립운동으로써, 순종 장례일을 기해 만세시위로 일어난 학생중심 민족독립운동이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사회*정치적 이념차이를 초월해서 민족주의성향 학생들과 사회주의성향 학생들이 연대해 일으켰으며, 순종황제의 인산일을 맞아 중앙*중동학교, 연희*보성전문 등 학생들이 제2의 3*1운동으로 민족의 독립의지를 내외에 과시하자는 뜻에서 장례 행렬을 따라 일으켰다. 이후 전국으로 확산되어 고창, 순창, 청주, 평양, 홍성, 공주, 울산, 군산, 전주, 하동, 당진, 강경 등으로 퍼졌으며, 시위와 동맹휴학 등을..
2024.09.01 -
(1925년)공산당 창당 그리고 마쓰야협정;최초 공산당 김재봉,김일성,박헌영/뿔뿔이 흩어진 독립운동가들.
1925년 4월 25일, 당시 공산주의 단체인 '화요회'와 일본유학생계의 '북풍회' 그리고 그 외 구성원 19명이 서울에서 [조선공산당]을 창당하였다. 당 조직은 책임비서에 김재봉, 조직부장 조동우, 선전부장 김참 등이였다. 원칙적으로 동일선상에서 늘 경쟁관계였던 그들이였지만 함께 좌파세력 확충에 힘쓰면서, 이미 민족주의자들의 각 종 기성단체에 침투하여 분할공작과 사상, 노동, 청년 등의 새로운 단체를 조직하는 방해를 벌였다. 이것을 결성하는 모체는 한국내 공산당 결성의 밀명을 받고 서울에 잠입한 김재봉이였다. 그는 1923년 6월 서울에 설치된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공산주의 인터내셔널 또는 제3인터내셔널)의 책임자였다. 공산당을 결성하고 신문에 창당게시글을 올렸다. [조..
2024.08.31 -
(1924년)서울대학교 전신 "경성제국대학"설립,정의부 "조선청년총동맹";교육이념을 벗어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정체성을 왜곡. 훗날 민주화운동의 전신이 된 조선청년총동맹 활동.
1924년에 일제는 서울에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한다. 일본제국이 식민지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설립하였으며 일본 제국주의의 학문적, 정치적 의도를 반영한 당시 조선에서 유일한 제국대학이자 조선인과 일본인을 함께 수용한 고등교육 기관이였다. 일본정부는 조선인 중에서도 일본의 식민통치를 수용하고 협조할 지식인 계층을 양성하여 친일적 인재를 육성하고 일본의 문화와 이념을 주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경성제국대학은 설립 당시 법문학부와 의학부 두 개의 학부로 시작하였으며, 이후 이학부가 추가되었고 각각의 학부에서는 법학, 문학, 의학, 자연과학 등의 학문을 교육하였다. 교수진은 조선인 교수도 있었지만 대부분 일본인으로 구성되었으며, 학생들도 초기에는 대부분 일본인이였으며, 점차 조선인 학생 수가 늘어날수록..
2024.08.27 -
(1923년)조선물산장려회 창립, 육군 주만참의부, 신은행령;"우리가 만든 것 우리가 쓰자",조선 경제적 자립을 막기위한 일제의 만행.
일제는 우리나라의 쌀을 헐값게 사가고, 반대로 일본에서 생산된 물건들을 조선에 팔았다. 대량생산 된 일제의 제품들이 밀려들어오자 국내기업의 제품들이 경쟁에서 밀리게 되자, 민족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기 위해 '조선물산장려회'가 설립되고 [우리가 만든것 우리가 쓰자]라는 표어를 걸고 '물산장려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국내의 자본력을 키우고, 조선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각계각층 인사들이 뜻을 모았다. 물산장려운동은 쉽게 말해 우리 제품을 애용하자는 운동이다. 일본 상품 배척과 함께 조선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단순히 상품애용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조업을 발전시키고 중소기업을 지원하며 민존 자본을 육성하는데 힘썼다. 서울에서 시작해서 전국적으로 활대되었으며 특히 여성과 학생들의 ..
2024.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