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이야기(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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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자유시 참변, 조선어연구회;독립군부대 간의 허탈한 쟁탈전,러시아 적군의 힘을 빌려 반대파 제거?...홍범도장군,주시경선생,말모이,우리말큰사전 등.
1919년 3*1운동 이후, 수많은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이나 러시아로 이주해 무장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이들은 일제의 압박을 피하고 무장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러시아 소비에트 정부와 협력할 수 밖에 없었다. 참고로 러시아로 이동한 독립군부대는 대부분 사회주의 계열이였다. 이들 가운데에도 파벌이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러시아 적군의 힘을 빌려 반대파를 제거하고 독립군부대의 지휘권을 강탈하려 한 자들도 있었는데, 이렇게 해서 벌어진 사건이 '자유시참변'이다. 러시아혁명 이후, 볼셰비키 정부는 한국 독립군을 지원하며 무장시키고 훈련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그리고 수많은 독립군 부대들이 러시아 극동 지역 '자유시(현재 '스보보드니')'에 집결하였다. 이때는 독립군 내부에서 저들끼리의 사상..
2024.08.23 -
(1920년)한국독립운동지혈사,회사령철폐,산미증식계획 실시,진주 소년회;백암 박은식,소파 방정환,어린이날 지정,어린이잡지,'어린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
1920년, 박은식은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라는 일제강점기의 한국 독립운동사를 기록한 책을 편찬하였다. 이 책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후세에 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상하이 유신사에서 간행하였다. 한국 독립운동의 주요사건들, 인물들 그리고 독립운동의 경과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당시 일제의 탄압속에서도 독립운동의 정신을 보존하고 계승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근대적 역사 서술 방식에 의하여 쓰인 한국 최초의 독립운동사 개설서로 와 더불어 민족주의사학이 이로부터 본격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한 이정표로 평가받는다. 과거 1910년에 일제는 '회사령'을 공포하여 한국에서의 기업 설립을 엄격히 통제해왔다. 한국인들이 기업을 설립하려면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으며, 이는 한국인들의..
2024.08.21 -
(1920년)봉오동전투,청산리대첩,간도참변,훈춘사건;홍범도장군,김좌진장군,만주지역 무장투쟁,북간도,백운평전투,어랑촌전투,일제의 만행,잔인한 학살 등.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 간도참변, 훈춘사건은 모두 1920년대 초반 일제강점기 시기에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벌어진 중요한 사건들로,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한국 독립군의 활발한 활동과 일본군의 보복이 얽힌 역사적 맥락을 담고 있다. 3*1운동 이후 만주 지역으로 많은 독립군이 이동하여 무장투쟁을 준비한다. 일본군은 만주지역에서 독립군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대규모 군사작전을 추진하는데, 1919년8월 이후 국내 진공작전을 펼치던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은 북간도 지역 독립군의 통일과 연합에 나서고, 일본군에 대항하여 1920년6월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국민회군, 군무도독부가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하였다. 이때 대한신민단의 독립군 부대가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에 진입해 일본..
2024.08.20 -
(1919년)제암리 학살사건;3*1만세운동에 대한 일제의 보복. 2007년 '아사히 신문'을 통해 공개된 우쓰노미야의 '그날의 일기', 스코필드 박사와 언더우드 선교사. 한국인의 독립의지와 저항정신!
이 전 글에서는 '3*1독립운동' 전후의 배경과 사건에 대해 소개했었다. 이번에는 3*1만세운동에 대한 일제의 보복사건을 다루고자 한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제암리 학살사건'이다. 1919년 3월 1일, 전국적으로 일어난 3*1운동은 일본의 폭압적 통치에 맞서 한국인들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중요한 사건이였다. 경기도 지역에서도 물론이고, 제암리와 그 인근 지역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다. 이 3*1운동에 대한 일본군과 헌병의 반응은 매우 강경하였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일본군이 독립운동에 참여하거나 협조한 마을을 표적으로 삼아 잔혹한 보복을 가하였다. 이때 제암리도 일본군의 타겟이 되었으며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당시 화성지역 주민들은 송산면, 장안면, 우정면 등에서 만세시위로 독..
2024.08.08 -
(1919년)고종황제 사망, 3·1 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의열단 창단, 기미 독립 선언서, 2.8 독립 선언. 의열단 김상옥, 나석주. 김구의 한인애국단.
1919년1월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사망한다. 이는 민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동시에 3*1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해 독살되었고 믿었고, 일제에 대한 반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한 기록에 의하면 고종의 시신 상태는 처참했다고 한다. 팔다리가 심하게 부어올라 바지를 찢어야만 했고, 치아가 모두 빠진데다 혓바닥도 닳아져 있었다. 또한 30cm 가량의 검은 줄이 목에서 복부까지 나 있었다. 이는 법의학적으로 명백히 독살을 의심해볼 수 있는 상태다. 1919년 한일강제합병이 일어난지 10년 뒤다. 고종은 이미 퇴위한 상태였는데, 당시 파리강화회의에 의친왕과 하란사를 밀사로 파견하여 황실의 독립의지를 알리고자 했다. [구라토미의 일기]에는 고종황제가 ..
2024.08.07 -
(1915년)박은식의 "한국통사(아픈역사)";책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비판 강화.
박은식(1859~1925)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이다. 한국역사의 연구와 교육에 힘썼으며, 독립운동의 정신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독립협회와 신민회 등의 활동을 통해 항일운동에 참여했으며, 중국으로 망명 후에도 계속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가 저술한 >는 고대부터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하고 한국의 자주독립성을 고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은 주요사건과 인물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었으며, 주요사건으로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한일병합조약 등이 포함된다. 또 일제의 침략을 강력히 비판하며 한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싸운 인물들과 사회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반대로 친일파와 부패한 조선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견..
2024.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