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5. 03:48ㆍ잡다한 지식
기원전 494년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1세의 군대는 소아시아의 할리카르나소스와 에페소스 사이에 있는 밀레토스라는 도시를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이 시대까지 밀레토스 도시엔 이런 일이 없었다. 도시들은 그저 촌락들이 아무런 계획이나 통제없이 점차적으로 발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예로들어 아테네는 미로나 다름없이 이리저리 뒤엉켜있는 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체적인 계획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무질서하게 생겨난 것이었다. 그러자 밀레토스의 주민들은 히포다모스라는 건축가에게 도시를 재건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스 건축가이자 철학자인 히포다모스. 그에겐 꿈이 있었다. 1만명의 남자와 4만명의 여자/어린이/노예 가 모여사는 '이상도시'를 건설하고 싶었다. 밀레토스는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백지 상태에서 이상적인 도시를 건설하기에는 아주 제격이었다. 중심가에는 무역상들이 진귀한 물건을 사고파는 상점들, 장인들이 특산품을 만드는 공방들 그리고 사방이 성벽으로 둘러싸여 안전하고, 귀퉁이마다 높다란 망루가 있어 공격하는 적들을 미리 발견하고 대비할 수 있는 완벽한 성곽도시!
히포다모스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도시의 형태가 사회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여 5,040명의 주민이 농,공,병 세 계층으로 나눠진 이상적인 도시를 구상한다. 도시 한복판에는 아크로폴리스가 있었고, 그곳으로부터 열 두 갈래읙 ㅣㄹ이 바퀴살처럼 퍼져 나간다. 도로는 일직선이고 원형 광장이며 집들은 이웃 간에 시샘하는 일이 없도록 모두 한결같은 모양으로 되어 있다. 주민들은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들이다. 그는 자기 도시에 예술가들이 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예술가들은 예측할 수 없는 사람들이고 무질서를 야기한다고 생각했다. 시인, 광대, 악사들은 밀레토스에서 추방되고 가난한 자와 독신자와 무위도식자 역시 도시에 들어오는 것이 금지된다.
절대로 고장나지 않는 완벽한 기계장치와 같은 도시! 일체의 장애를 피하기 위해 혁신이나 창의도 없고 인간의 변덕도 일체 허용하지 않는 도시. 이런 사고방식에서 히포다모스는 '정리정돈'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생각해 낸 건축가이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시민은 도시의 질서 속에 잘 정돈되어 있어야 하고, 도시는 국가의 질서 속에 잘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
그의 꿈은 그리스 여러 도시에서 실현됐다. 기원전 4세기,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인도아대륙의 서부를 점령한 알렉사드로스(알렉산더)대왕은 히포다모스의 계획도시를 적극 채택했다. 정복한 요지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알렉사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요새 역할을 하면서 현지 주민과 효과적으로 결합하고, 교역*생산 중심지로 만드는게 건설 목적이였다. 히포다모스의 계획도시는 그의 '동서문화결합'을 통한 헬레니즘 확산을 이뤄가는데 유용한 아이템이였다.
그 중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는 '캅카스 산맥의 알렉산드리아'다. 실크로드의 십자로에 위치한 교역도시로써, 동으로는 중국/서로 페르시아/북으로 중앙아시아/남으로 인도아대륙으로 연결된다. 알렉산드로스는 이곳을 7000명의 마케도냐 군인과 3000명의 용병, 수천명의 원주민이 함께 사는 국제도시로 만들었다. 특히 2세기에 크게 번성하였는데, 인도에서 온 상아 조각상, 중국 한나라에서 온 칠기,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온 유리잔, 그리스의 대리석 조각상 등 동서남북에서 흘러 들어왔고 교역이 활발했다. 드디어 히포다모스의 꿈이 실크로드 한복판에서 꽃을 피웠다!
현재 이곳은 '바그람'이다. 아프간으로 간 한국군의 유력한 주둔지 중 한 곳이다. 현재 미군 비행장이 있으며, 오랫동안 외부인에게 배타적인 편이다. 1841년 영국군은 이곳을 일시 점령했지만 지역군벌에 의해 몰살당했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시 바그람 비행장을 이용해 작전을 펴던 소련군이 10년만에 이곳을 허겁지겁 빠져나갔다. 과거의 실크로드 중심도시로 재건되려면 군사*정치*경제적인 시너지 효과가 하나로 결합된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