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니 멘델스존;작곡기법-카논,캐논,Canon,바로크시대음악,서양음악,결혼행진곡,펠릭스멘델스존,여성작곡가,부활절소나타,이탈리안,몬테베르디.

2022. 12. 17. 11:09잡다한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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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지식백과 - 바흐 <푸가 기법>

 

바로크시대에는 몬테베르디의 기법이 오케스트라로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였다. 이 시대 작곡기법은 단순한 멜로디에 여러 파트를 모아모아서 진행하는 폴리포니 양식이 발달하였다. 그는 '오르페오' 오페라에서 현악기를 중심에 두었는데 이후 후배 작곡가들에 의해 필수+금관/목관악기를 더해간다. 이 시대에 본격적으로 많은 악기가 만들어지고 후반대에 현대와 비슷한 규모의 편성을 이루었다. 푸가 캐논 인벤션같은 기악음악이 꽃을 피우게 되고, 메아리기법 즉 동일한 패시지를 가지고 강약으로 대조하여 반복하는 기법이 훗날 바로크메탈에 많은 영향을 준다. 바로크메탈은 '헤비메탈+클래식' 장르이다.

 

서양음악 작곡기법의 하나인 '카논(Canon)'은 무척 흥미롭다. 한 예로, 프랑스민요 '자크 수사' 나 '아침바람, 상쾌한 바람' 혹은 파헬벨의 '카논' 등을 들 수 있다. 

 

카논은 단일한 주제로 구성되는데, 연주자는 그 주제의 모든 측면을 탐색하면서 그 주제를 그것 자체와 대면시킨다. 우선 1성부가 주제를 제시한다. 그러면 정해진 간격을 두고 제2성부가 주제를 되풀이한다. 다시 제3성부가 선행 성부를 모방한다. 전체가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음 하나하나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기본 선율에 따를 것.

둘째, 기본 선율에 반주를 덧붙일 것.

셋째, 기본 선율과 반주에 또 다른 반주를 덧붙일 것.

 

'오페라 유령'의 조상 몬테베르디

 

곧, 각 요소가 세가지 수준을 동시에 갖게 하는 구성이다. 각 요소는 위치에 따라 주연이 되기도 하고 조연이 되기도 한다. 음을 추가하지 않고 단지 고음부와 저음부에서 음높이를 변경하는 것만으로 카논을 정교하게 만들 수 있고, 후속 성부를 반 옥타브 간격으로 시작하는 방법을 통해서도 카논을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 즉, 선행 성부가 <도>로 되어 있으면 후속 성부는 <솔>, 선행성부가 <레>로 되어 있으면 후속성부는 <라>가 되게 하는 방식이다. 

 

노래의 빠르기에 변화를 주는 것 역시 카논을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더 빠르게 하는 경우에는 선행성부가 선율을 연주하는 동안 후속성부는 빠른 속도로 선율을 두번 되풀이 한다. 더 느리게 하는 경우에는 선행성부가 선율을 연주하는 동안 후속성부는 두 배 더 느린 속도로 연주한다. 

 

또 선행성부의 선율을 상하로 자리바꿈하여 모방하는 방법을 통해서도 카논을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 즉, 주제의 모든 음에 대해 선행성부가 올라가면 후속 성부는 내려가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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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결혼식장에서 빠지지 않고 연주되는 '결혼행진곡'. 이 곡의 작곡가는 '멘델스존'이다. 그런데 보통 멘델스존을 '펠릭스 멘델스존'만을 떠올리는데, 또 한 명의 음악가 멘델스존이 있다. '파니 멘델스존! 파니 멘델스존은 펠릭스 멘델스존의 가족이자 독일의 뛰어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다. 4살때부터 어머니 레아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14살에 바흐의 '평균율 클라이버 곡집'을 전부 외운 천재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천재성과 재능을 알면서도 남동생(펠릭스 멘델스존)을 위재 음악을 포기할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그녀는 남동생을 위해 자신의 길을 포기한다. 당시엔 그녀가 '현명하고 뛰어난 여성'의 모습으로 비춰졌기에 거부하기도 어려웠다. 아버지의 뜻대로 그녀는 정식 음악가로 활동하진 않았다. 그녀는 꾸준히 자신의 작품을 작곡했고, 심신이 괴로울때면 음악으로 위안을 받았다.

 

펠릭스가 더 넓은 세상을 탐구하고 성장해가는 동안, 파니도 자신 나름대로 음악에 전념했다. 어머니 레아는 파니가 좌절하지 않도록 그녀의 작품 두개를 골라 펠릭스 멘델스존의 작품집에 끼워넣어 세상에 공개했다. 전해오는 일화중엔, 펠릭스 멘델스존이 빅토리아 여왕 앞에서 '12개의 노래'를 연주했는데, 빅토리아 여왕이 그 중에서도 파니가 작곡한 '이탈리안'을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훗날, 파니 멘델스존은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드러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는데, 펠릭스는 슬퍼하며 파니의 작품 일부를 황급히 출판사에 보낸다. 그리고 6개월 뒤 펠릭스도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2010년. '부활절 소나타'가 파니의 작품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2017년 3월, '국제 여성의 날'에 이 곡이 파니 멘델스존의 이름으로 초연되었다. 2018년 파니와 펠릭스의 삶과 음악을 담은 박물관이 독일 함부르크에 개관되었다. 

 

 

파니 멘델스존의 '이스터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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