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26. 22:46ㆍ잡다한 지식
북 아프리카에 있던 이슬람교 시아파의 한 갈래인 파티마 왕조의 칼리프 알 아킴은 카이로에 살았다. 그는 자기 도시를 얼마나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지, 자기 권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어했다. 그래서 불합리한 법령을 제정한 다음, 자기 백성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수수한 마실꾼 행색으로 미복을 하고 도시를 돌아다녔다. 그는 자기의 모든 백성을 대상으로 사회학적 실험을 한 셈이다. 백성들이 자기 명령에 얼마나 잘 복종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는 맨 먼저 야간 노동을 금지했다. 그가 내세운 이유는 빛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을 하면 시력이 나빠진다는 거였다. 누구든 밤에 촛불을 켜놓고 일하다 적발되면 사형에 처하기로 했다.
밤 마실꾼으로 변장하고 돌아다니다가 그는 어떤 빵집 주인이 일하고 있는 현장을 잡았다. 알 아킴은 그 사람을 빵 굽는 가마에 넣어 화형시켰다. 그러고 나니, 모든 백성이 밤일을 금한 그 법에 잘 따랐다. 그것을 확인하자, 그는 법을 바꾸어 주간 노동을 금지했다. 이번엔 모두가 밤에만 일을 해야 했다. 그의 백성들은 길들여진 짐승처럼 그의 기발한 법령들이 공표되기가 무섭게 시키면 시키는대로 금방 따라왔다. 그때부터 그에겐 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그는 모든 종교를 지배하기 위하여 카톨릭 성당과 유대교 회당을 헐게 하고, 변덕쟁이 군주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두 종교의 신전을 다시 짓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해 주었다. 이어서, 여자들에게 향수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신발 삼는 것을 금하고, 화장을 못하게 하더니, 급기야는 여자들의 외출마저도 금지해 버렸다. 어느날 그는 자기가 만든 법이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하러 돌아다니다가, 공중 목욕탕에서 한 무리의 여인들을 찾아냈다. 그는 즉각 모든 출구를 봉쇄하도록 지시했다. 여인들은 그 안에서 굶어 죽었다...
알 아킴은 도박을 즐기기도 했다. 그는 토후들 앞으로 보내는, 봉인된 서신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녔다. 서신에는 '이것을 가져온 자에게 황금을 듬뿍 주시오' 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그가 뿌린 편지를 줍는 것은, 읽은 자가 죽음을 당한다는 점만 빼면, 오늘날 복권을 사는 행위와 다를게 없었다.
어느날, 그의 옷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강변에서 발견되었다. 십중팔구는 그의 수많은 적 중의 하나가 그를 살해했을 터였는데, 그의 시체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죽은 뒤에 그에 대한 숭배가 은밀하게 번져 나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를 지혜와 상상력이 충만했던 군주로 추켜세우는 사람들마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