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무의 '대마도정벌';'독도'는 한국땅! '대마도'도 한국땅! 흔일강리역대국도지도,세종대왕,주원장,선제정벌,대마도주 등.

2023. 12. 29. 16:07그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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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에서 조선초기, 끄덕하면 왜구의 대한 침략이 일어나기에 매우 큰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에 세종대왕은 대규모 원정함대를 구성하고 왜구의 근거지라 할 수 있는 대마도를 정벌하기로 한다. 대마도는 부산에서 최단거리 49.6km이며 일본 후쿠오카에서 134km 떨어진 곳으로 일본보다는 우리나라에 가까운 일본 섬이다. 

 

당시 배경을 살펴보면, 왜구가 조선뿐 아니라 명나라에도 간간히 침략을 일삼았는데, 이에 명나라의 홍무제는 왜구에 대한 방어책으로 해금정책을 시행하여 외국과의 교역 및 해외 도항을 금한다. 결국 약탈과 사무역에 의존한 쓰시마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리고 명나라 실권자였던 주원장은 이들 왜구세력이 반대파와 결탁할 것을 우려하여 조선에 건의를 한다. "우리가 병선 1만척을 내어 토벌에 나설 것인데, 너희 조선도 이를 미리 알고 있으라." 이에 조선은 과거 여몽연합군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까봐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명나라보다 먼저 대마도정벌을 시작한다. 

1419년, 아버지 태종때 이어 세종대왕은 비상소집령을 내려 이종무(李從茂,1360~1425,본관 장수)를 삼군도체찰사로 임명하고 조선 수군 주력군을 거제 견내량에 결집시킨다. 당시 모인 수군은 전선 227척/1만7285명의 병력이였다. 그리고 정벌의 길에 나설 때 조선으로 귀환한 왜인을 길잡이로 두었다. 

 

1419년 6월 20일, 조선수군이 대마도에 당도한다. 당시 이를 본 왜인들은 자신들의 왜구들이 돌아온건 줄 알고 술과 고기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조선군은 왜인들을 수색하여 적선 129척을 빼앗고 중국포로 약130여명을 구출하였다. 그리고 이종무가 대마도도주에게 항복을 권했지만 응답이 없기에, 본격적인 대마도 정벌이 시작된다. 쓰시마해안을 봉쇄하고 두지포와 훈내곶에 상륙, 6월26일에는 니로군 지역에 상륙한다. 이때 적의 매복에 당해 180여명의 조선군이 전사한다. 하지만 14일간의 원정 후 대마도도주가 조선군의 철군을 요청하며 선린관계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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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대마도도주에게 조선의 속주가 되거나 대마도를 비우고 일본 본토로 돌아가라고 했다. 이에 도주는 조선의 심복이 될 것을 약속하면서 원정때 포로가 되었던 조선군 4명을 보낸다. 이후 1436년, 대마도의 식량사정이 어려워 대마도도주가 아예 조선으로 편입시켜달라는 상소문을 올린다. 그리고 대마도는 경상도에 예속되었다! 대마도도주의 아들 소 시게요시는 조선의 관직인 종일품 판중추원사 겸 대마주도제사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대마도도주는 왜구의 난립을 막는 대신 일본에서 조선으로 가는 모든 선박에 대한 문인(도항증명서)을 발행하는 권리를 갖게 된다. 

조선 초기에 제작 된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보면, 조선팔도도와 일본지도 그리고 중국, 아랍의 지도를 합쳐서 제작하였다. 그리고 이 지도에는 조선의 남해안에 대마도가 표시되어 있고, 일본의 지도에는 대마도가 빠져있다. 또 임진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가지고 있던 지도에도 대마도가 조선의 지도로 표시되어 있었다. 곧, 조선 중기까지 대마도는 조선의 영토였던 셈이다. 이후 대마도가 일본의 영토가 된 것은 '메이지유신'때 라고 한다. 

이종무의 대마도정벌은 명나라의 원정을 막은 조선의 선제정벌이였으며, 이 정벌로 인해 대마도는 한동안 조선의 영토가 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고려말부터 이어져 온 왜구침략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세종실록에는 이종무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일찍이 무예를 익혀 왜구를 여러 차례 막아내니, 적을 잘 제어한다는 명예가 높았다. 삼군을 통솔하고 섬 오랑캐를 토벌하였으니, 그야말로 간성(干城)의 장수요, 우리 사직의 신하이다." (세종7년6월17일)

 

참고로, 대마도정벌은 이종무가 최초는 아니다. 

1차 대마도정벌 : 1389년(고려 창왕2년) 박위 - 왜선 300척을 불사르고, 고려 민간인 포로 남녀 1백여명 구출.

2차 대마도정벌 : 1396년(조선 태조5년) 김사형 

3차 대마도정벌 : 1419년(조선 세종1년) 이종무 - 적병 114명 참수, 21명 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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