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3. 20:53ㆍ그날의 이야기
탕평책을 펴서 붕당폐단을 막은 영조. 그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게 해준 지지세력 노론을 배제할 수 없었고, 당시 중앙에서 밀려난 소론은 경종의 급작스런 죽음과 관련하여 언제든지 영조에게 태클을 걸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1755년에 나주로 유배를 간 윤지(소론)라는 자가 조정에 간신들이 가득하다는 벽서를 붙이자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영조의 껄끄러운 일들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자 영조는 격노하였고, 노론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소론을 중앙에서 모두 몰아내려 하였다.
영조는 소론을 몰아낼 생각이였는데, 하필이면 하나밖에 없는 아들자식(사도세자)인 왕세자가 소론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영조는 세자가 점점 못마땅해지고 노론도 왕세자에게 불안감을 갖게 된다. 또 정순왕후의 이간질도 있었고, 왕세자도 끄덕하면 사고를 치며 말썽을 피우기에 점점 고민에 빠진다...
영조와 후궁 영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왕세자 이선. 그는 태어날 당시 영조의 기쁨이었다. 당시 장남 효장세자를 7년전에 잃고 난 후 힘들게 얻은 아들이었다. 태어난 이듬해 1736년에 이제 막 돌이 지난 이선을 왕세자로 책봉하였고, 이선이 성균관에 입학하자 성균과 탕평비도 특별히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선도 어렸을 땐 무척 총명했다고 한다. 7달에 동서남북을 구분할 줄 알았고, 2살때 천자문을 배워 60여자를 써냈다고 한다.
왕세자가 4살때. 영조는 갑자기 돌변하며 끄덕하면 아들을 구박하고 혼내기 일쑤였다. 10살이 넘어서는 영조를 두려워해 묻는말에 제대로 대답도 못했다. 심지어 비가오거나 또는 가뭄이 와도 세자에게 덕이 없어서 그렇다면서 괜히 혼내기 일쑤였다. (또라이네 ~) 영조는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는데, 실상은 뒤에 앉아 영조가 일을 다 처리해버렸다. 그러면 계속 세자를 책망하고 질책하였다. 하도 혼내기만 하는 영조를 두고 보다못한 조정의 신하들조차 항의할 정도였는데, 영조는 듣는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꾹 참고 살아왔던 이선은 유일하게 자신을 챙겨주었던 할머니 인원왕후와 어머니 정성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결국 미쳐버리고 만다.
이선은 정신질환이 심해져 폭행 및 살인 등을 저지르게 되는데, 비구니나 수많은 궁녀들을 성폭행하였으며, 내시나 나인들을 살해하기도 하였다. 1762년 5월 22일, 나경언은 세자가 저지른 만행을 10조목의 글로 작성하여 영조에게 고한다. 영조는 분노에 차서 나경언을 참형에 처하지만, 이로 인해 세자의 기행에 대해 자세히 알게된다.
1762년 7월 4일, 영조는 갑자기 이선을 부른다. 그러고는 이선을 데리고 숙종의 위패를 모신 선원전으로 가서 절을 올리고, 다시 창경궁의 정성왕후 휘령전으로 가서 또 그곳에서도 절을 올린다. 그러고는 "여러 신하들 역시 신의 말을 들었는가? 정성왕후가 정녕 나에게 이르기를 '변란이 호흡 사이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뒤이어 휘령전은 군사들로 둘러쌓인다. 그러고는 왕세자 이선을 바라보며 "자결하라!" 고 명하였는데 세자는 이를 거부하였고, 이선의 스승 임덕제와 춘방의 신하들까지 몰려와 영조에게 용서해달라 간청하였다. 영조는 세자를 서인으로 폐하고 뒤주(쌀 이나 곡식 등을 넣는 궤)에 가두어 버린다.
귀주에 갇혔을 때, 이선도 근위병들도 영조가 정말 죽일 줄 몰랐다고 한다. 뒤주에 갇혀있으면서 이선이 무척 괴로워하자 가끔씩 근위병들이 뒤주를 열어주어 바람을 쐬기도 하였고, 궁인들이 찾아와 음식과 부채 등을 주기도 하였다. 헌데 이를 안 영조가 결국 뒤주를 꽁꽁 묶어버리라고 명하고 하루에 한 번씩 뒤주를 흔들어 죽었는지 살았는지만 확인하라고 한다. 그리고 뒤주에 갇힌 지 7일째 되어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8일째인 1762년 7월 12일에 뒤주를 열어보니 세자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뒤늦게서야 영조는 자신이 죽인 게 정적이 아닌 '아들'이었음을 깨달았고, 이를 후회하며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리고 장례를 치를 땐 제주(題主)를 청하였다. 탕평책을 펼친 영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아들을 붕당정치, 파벌싸움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이 사건은 조선사 최대 비극 중 하나로 남게 된다. 영조의 아들을 향한 비뚤어진 마음과 악역을 자처한 선택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던 것 일까...